멸치 - 김태정
네 뼈로 내 뼈를 세우리
네 살로 내 살을 보태리
네 몸을 이루는 바다로
삶의 부력을 완성하리
은빛 비늘의 눈부심으로
무디어진 내 눈물을 벼리리
어느날 문득 육지를 보아버린
네 그리움으로
메마른 서정을 적시리
그리하여 어느 궁핍한 저녁
한소끔 들끓어오르는 국냄비
생의 한때 격정이 지나
꽃잎처럼 여려지는 그 살과 뼈는
고즈넉한 비린내로 한 세상 가득하여,
두 손 모아 네 몸엣것 받으리
뼈라고 할 것도 없는 그 뼈와
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 살과
차마 내지르지 못하여
삼켜버린 비명까지
올해 여름에도 삼계탕을 먹었다. 이 집 삼계탕은 참 부드럽고 쫄깃하다고, 땀 흘리며 뼈를 발라내며 말했다. 그 닭한테 뭐라고 해야 하나. 한평생 사는 동안 내 이빨이 씹은 생명들에게, 내 혀가 핥은 근육들에게, 내 목구멍이 삼킨 팔다리들에게, 내 위장이 똥으로 만든 모든 눈과 귀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너희들을 먹고서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너희들을 희생시킨 대가로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더 나은 삶과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고? 그것들 먹고 나 뭐했나. 좋은 문장 몇 개 읽었다고? 용기와 위로를 주는 말 몇 마디 했다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 조용히 사색했다고? 그래서 “뼈라고 할 것도 없는 그 뼈와 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 살”을 먹었다고?
오래 사시라고 말해서 미안하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라고 기원해서 미안하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이라고 말해서 미안하다. 뭘 먹었기에 얼굴이 이렇게 좋아졌냐고 칭찬해서 미안하다. 어느 맛집이 끝내준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서 미안하다. 맛있어서 먹는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미안하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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