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내 사랑 -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시집『그리운 여우』(창작과 비평사, 1997)
시인이 찾아가는 길을 남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았던 ‘잘 늙은’ 절집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 불명산 산자락에 놓인 작고 허름한 사찰이다.
세월의 풍파에 부대껴 기둥은 거무튀튀하고 단청은 흐릿해졌으며 목어에는 두껍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어느 한 곳 반질반질한 곳 없이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은 화암사는 그 가는 길 또한 울퉁불퉁하다.
‘잘 나가는’ 절집 대개가 일주문을 통과해서 법당 앞까지 길이 놓여 차로 편히 갈 수 있는데 반하여, 불명산 중턱 화암사는 벼랑에 허리 낮추고 계곡을 아슬아슬하게 건너 어둑어둑한 참나무 숲을 따라 한 20분가량 산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절집이다.
그래서 화암사는 여럿이서 분답하게 찾아가는 절집이 아니라, 스스로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찾아가면 좋은 곳이다.
여름한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타박타박 걷다가 나무그늘에서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 한 자락에 땀을 식혔다가, 봄이었다면 현호색과 얼레지가 지천이었을 산길을 좀 더 걸어 화암사 우화루나 불명당 툇마루에 당도해 앉으면 절로 마음이 평온하고 겸손해지리라.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기도 할 것이고, ‘안마당에 먼저 와 있는’ 햇볕을 보며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한’ 자신을 되돌아보게도 하리라.
한 건축전문가는 이 절을 ‘환상적인 입지와 드라마틱한 진입로, 그리고 잘 짜여진 전체 구성만으로도 최고의 건축이다’라고 칭송했으니 시인이 ‘화암사, 내 사랑’이라며 오래도록 아껴가며 남몰래 찾고자했던 그 연유마저 알 것 같다.
하지만 반드시 그 같은 입지조건과 분위기를 갖추어야 내 마음의 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땅 어느 산자락이든 절이 있고 부처가 있으며 이끼 낀 돌계단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됐다.
지치고 헐벗은 육신을 잠시 벗어던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도 4년 전 화암사에 가서 안도현의 또 다른 시에 등장했던 ‘하얀 강아지’ 두 마리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던 기억은 있지만 시인의 사랑을 가로채거나 공유할 궁리는 하지 않았다.
- 시인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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