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너머라는 말은 - 박지웅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아무 힘 들이지 않고 문질러보는 어깨너머라는 말
누구도 쫓아내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아주 넓은 말
매달리지도 붙들지도 않고 그저 끔벅끔벅 앉아 있다가
훌훌 날아가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하는 깃털 같은 말
먼먼 구름의 어깨너머 있는 달마냥 은근한 말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은은한가
봄이 흰 눈썹으로 벚나무 어깨에 앉아 있는 말
유모차를 보드랍게 밀며 한 걸음 한 걸음
저승에 내려놓는 노인 걸음만치 느린 말
앞선 개울물 어깨너머 뒤따라 흐르는 물결의 말
풀들이 바람 따라 서로 어깨너머 춤추듯
편하게 섬기다가 때로 하품처럼 떠나면 그뿐인 말
들이닥칠 일도 매섭게 마주칠 일도 없어
어깨너머라는 말은 그저 다가가 천천히 익히는 말
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닮아가는 말
따르지 않아도 마음결에 먼저 빚어지는 말
세상일이 다 어깨를 물려주고 받아들이는 일 아닌가
산이 산의 어깨너머로 새 한 마리를 넘겨주듯
꽃이 다음 올 꽃에게 자리 내어주듯
등을 내어주고 서로에게 금 긋지 않는 말
여기가 저기에게 뿌리내리는 말
이곳이 저곳에 내려앉는 가벼운 새의 말
또박또박 내리는 여름 빗방울에게 어깨를 내주듯
얼마나 글썽이는 말인가 어깨너머라는 말은
일부러 장애물을 배치하여 주제에 대한 강한 집중을 유도하는 사진 기법이 있다. 마치 엄마 등에 업혀 엄마의 왼쪽 오른쪽 어깨너머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촬영하는 사진기법이다. 사물의 전체는 엄마의 어깨로 어느 정도 가려져 있다. 그러나 전경을 정면에서 마주했을 때, “들이닥칠 일도 매섭게 마주칠 일도 없이” 엄마의 어깨너머에 있는 아기는 더욱 강렬한 호기심을 가지고 안전하고도 자유롭게 집중하여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지각 이론에 기초한 숄더 샷 프레임(shoulder shot frame) 기법은 주로 다큐멘터리에서 즐겨 쓰인다.
우리 어머니들은 두 손을 자유롭게 하여 일 할 수 있도록 아기를 포대기로 업었다. 아기를 업은 채 부엌일에서 밭일 까지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일하는 동안, 아기는 어머니의 따스한 등에 업힌 채 세상을 보고 듣는다.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미리 보고, 미리 느끼고, 미리 배우는 어머니 어깨너머 학습은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원리’가 아니라 주위 사람을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며 더불어 사는 것을 익혀 ‘업고 업히는 상생의 원리’를 습득하는 것이라고 이어령은 전언하고 있다.
“어깨너머라는 말은” “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닮아가는 말/따르지 않아도 마음결에 빚어지는” 배움이 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은 숄더 샷 프레임(shoulder shot frame) 기법처럼 “누구도 쫓아내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상태에서 사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다. “산이 산의 어깨너머로 새 한 마리를 넘겨주듯/꽃이 다음 올 꽃에게 자리 내어주듯” “세상일이 다 어깨를 물려주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앞선 개울물 어깨너머 뒤따라 흐르는 물결”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내어주고 서로에게 금 긋지 않”으면서도, 해결하고 집중해야 할 문제에 대해 어머니 어깨너머로 익힌 ‘업고 업히는 상생의 원리’를 적용해 보면 어떨까.
서대선 (시인)
“어깨너머”는 경계(境界)의 자리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자리,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을 만나는 접속의 자리. 그러나 “어깨너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탈주(脫走)와 전이(轉移)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은은하고, 느리다. 떠난 세계와 떠날 세계가 길항(拮抗)하지 않는 곳, 한 어깨가 다른 어깨를 내어주는 곳.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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