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먹는 저녁 - 김화순
펄떡이는 꽃게 몇 마리 산다
꽃게는 톱밥을 밀어내며 안간힘으로 버틴다
사방으로 날리는 절체절명
유보된 죽음이 시간을 조금씩 자르고 있다
집게발이 허공을 잘라내고
시선을 잘라내고
저녁 6시를 잘라내자
시침과 분침이 기우뚱, 중심을 잃는다
서쪽 하늘이 서서히 피를 흘린다
집게발이 햇살의 마지막 온기를 싹둑, 자른다
잘린 하루치의 바다가 한사코 냄비 속으로 풀어진다
부글부글 비어져 나오는 게거품
집게발의 사투가 차려낸 저녁 식탁은
달그락 달그락 꽃내음 비릿하다
삶은 누군가의 죽음이 가져다준 에너지라며
나는 게눈 감춘 듯 먹어치운 죽음으로 하루를 연장한다
죽음이 나를 새롭게 편집한다
시인은 “꽃게 몇 마리”를 사다가 그것이 죽어 냄비 속에 들어가 음식이 되어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죽음이 잠시 유보된 “절체절명”의 순간에 ‘허공, 시선, 소음, 저녁 6시’를 잘라내면 일상적인 시간을 가리키는 “시침과 분침”이 중심을 잃는다. “햇살의 마지막 온기”마저 자르고 “하루치의 바다”를 냄비에 풀어 넣고 차려낸 “저녁 식탁”엔 “꽃내음”이 비린내를 풍긴다. 그렇게 일상성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되고 현실을 지배하는 기계의 시간으로부터 떠나는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꽃게’가 신선한 ‘꽃’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시인은 그 꽃게의 죽음으로 “하루를 연장”하며 자신을 “새롭게 편집”하여 새 날을 맞고 향기로운 시의 꽃을 피울 것이다.
김석환(시인, 명지대 명예교수)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이 하는 일 - 이영광 (1) | 2024.02.11 |
---|---|
오십세 - 전건호 (1) | 2024.02.11 |
몰이꾼과 저격수 - 문혜진 (1) | 2024.02.10 |
기억은 어항이 아니라서 - 신현림 (1) | 2024.02.10 |
사람은 죽어서도 싸운다 - 최서림 (1) | 2024.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