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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묵어라 - 전동균​

에세이향기 2024. 3. 1. 21:10

물 묵어라 - 전동균

밤새 앓으며 잠을 못 잔 아내와

늦은 아침을 먹는다

삶은 고구마와 바나나를

 

아내는 지금

제 속의 여자를 떠나보내는 중이다

입술은 갈라지고

얼굴은 퉁퉁 붓고

갑자기 사막으로 쫓겨난 하마 같다

 

그래도 당신에겐

첫사랑과 어머니가 함께 있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색도 않는다

 

(…)

 

물 묵어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물 잔을 건넬 뿐

 

 

갱년기 증세를 견디느라 잠 못 잔 사람은 상태가 말이 아니다. 아침 밥상은 약식이다. 아내를 사막으로 쫓겨난 하마 같다고 안타까워할 뿐 남편은 표 내어 위로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하지만 고구마는 목이 멘다. '물 묵어라'는 무뚝뚝한 한 마디에 숱한 감정이 배어 있다. 첫사랑이었던 남편도 말을 안 할 뿐 사실은, 정글로 쫓겨난 낙타 같은 갱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