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그린 지도/강수니
내 발등엔 지도가 있다
걷기에만 바빠 못 보던 길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툭툭 불거져
발 거죽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다
굽은 길도 펴가며 걸어 왔었는데
구비를 돌 때 마다 부풀며 휘어져있다
위기 때마다 불끈, 힘주어 일어섰던 불거진 마디들
저 아래 퍼런 시집살이 정맥이 희미하게 지나가고
자지러지는 아기 업고 숨 멎을 듯 뛰던 길
남편 상여 뒤로 발 굴리며 따라가던 깜깜한 길들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세월의 발목을 잡고 여기까지 그려진 지도는
세상의 지우개로는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다
그러나 길은 이어지는 것, 걸으면 또 길이 된다
여기가 종점, 발등 위는 다시 찾아 오르는 길
그래 가자! 이렇듯 걸어 왔는데 어딘들 못 가리!
다시 심장으로 되오르는
회전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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