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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이끼/김경성

에세이향기 2021. 5. 28. 15:35

이끼

 

김경성

 

 

그만큼의 거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디여도 몸 내려놓을 자리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가장 가벼운 몸으로 골짜기 그 너머까지

썩은 나무의 등걸을 지나 동굴 속까지

너른 바위 안쪽까지

철퍽철퍽 미끄러지는 물 잔등이어도

마른 입술 툭툭 터지도록 긴 가뭄이어도

몸 깊숙이 남겨놓은 자리가 있어

후드득 지나가는 빗방울 몇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대 곁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

아주 짧은,

단 한 번의 부딪힘만으로도 너른 바위를 덮고

계곡을 덮고

고인돌까지 덮을 만큼

지독하게 간절한

무엇이 있어

 

 

 

ㅡ출처 : 시집 『와온』(문학의전당, 2010)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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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득 지나가는 빗방울 몇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대 곁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

아주 짧은,‘

아마도 이 시에서 이끼를 시적으로

나타낸 묘사가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습기 있고 그늘진 곳에서 살지만

삼림과 숲의 바닥에 깔려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단 한 번의 부딪힘만으로도 너른 바위를 덮고

계곡을 덮고

고인돌까지 덮을 만큼

지독하게 간절한

무엇이 있어‘

이 부분은 삼림과 숲의 바닥 어디든

조건만 맞는다면 존재하리라는

촌철살인 같은 기도다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관한 간절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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