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김경성
그만큼의 거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디여도 몸 내려놓을 자리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가장 가벼운 몸으로 골짜기 그 너머까지
썩은 나무의 등걸을 지나 동굴 속까지
너른 바위 안쪽까지
철퍽철퍽 미끄러지는 물 잔등이어도
마른 입술 툭툭 터지도록 긴 가뭄이어도
몸 깊숙이 남겨놓은 자리가 있어
후드득 지나가는 빗방울 몇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대 곁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
아주 짧은,
단 한 번의 부딪힘만으로도 너른 바위를 덮고
계곡을 덮고
고인돌까지 덮을 만큼
지독하게 간절한
무엇이 있어
ㅡ출처 : 시집 『와온』(문학의전당, 2010)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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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득 지나가는 빗방울 몇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대 곁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
아주 짧은,‘
아마도 이 시에서 이끼를 시적으로
나타낸 묘사가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습기 있고 그늘진 곳에서 살지만
삼림과 숲의 바닥에 깔려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단 한 번의 부딪힘만으로도 너른 바위를 덮고
계곡을 덮고
고인돌까지 덮을 만큼
지독하게 간절한
무엇이 있어‘
이 부분은 삼림과 숲의 바닥 어디든
조건만 맞는다면 존재하리라는
촌철살인 같은 기도다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관한 간절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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