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근
김 은
진흙 먹으며 집 지켰고
가뭄으로 지붕이 내려앉을 땐
소금쟁이 다리 끝에서 생기를 얻었지
곧게 서서 물위에 푸른 지붕을 얹고
연분홍 황녀 같은 꽃 피워내어
증발하는 물 막고 비단잉어의 새끼도 받았다
살갗엔 거뭇거뭇한 반점들이 있으나
매끄러운 살빛에선 여자의 분 냄새도 난다
연근이 뽑혀나간 못
여기저기 둥글게 퍼낸 저 흔적은
숭숭 구멍 뚫린 어머니의 가슴팍이다
그녀가 부재중인 진흙은
어쩌면 자정능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꼬르륵 연못의 배 앓는 소리 들릴 때
힘겹던 그 세월, 우리
백분의 일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말갛게 씻겨 도마에 오른 알몸 위에서
내 어머니 골다공증의 이력을 다시 본다
시집 『시계는 진화 중』 2021. 지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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