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과부/ 한인자
"햇과부, 어서 오셔."
"??"
황당한 호칭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못 알아들은 줄 알고 거듭 말한다.
"햇과부, 어서 오시라고."
"햇과부요?"
"그렇지. 너는 햇과부, 우리는 묵은과부."
남편이 떠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가까운 두 선배가 맛있는 밥 먹자며 만나자고 했다. 약속 장소는 럭셔리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한껏 멋을 낸 선배들이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축 늘어져 들어오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큰소리로 해맑게 "햇과부'라고 불렀다. 선배들의 진정한 위로에 울컥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를까 겁나는 이름 '과부'를 두 선배는 거침없이 막 부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를 웃기겠다고 민망한 이름을 들석이며 고육지책을 쓰는 선배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실없이 터져나왔다. 잃은 지 오랜 웃음을 한참을 웃고나니 막힌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내 현주소를 확실하게 인식시켜준 호칭이었다. 남편이 떠났으니 과부인 것이 확실하고 혼자된 지 얼마지 않으니 '햇과부'임에 틀림없었다. 자고로 60 넘어 혼자되면 과부라 부르지도 않는다는데, 70대 중반인 내게 과부라고, 그것도 햇과부라고 부른 것은 나를 웃기겠다는 선배들의 사랑의 처방이었다.
"그래, 우린 인제 묵은과부일세. 햇과부가 데뷔했으니."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선배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우울의 깊은 늪으로 바져만 갈 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준 선배들의 묘약은 한방에 대성공이었다.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살이의 흔적을 지우는 절차는 번거롭고 행정적인 문제는 까다로우며 성가셨다. 초상치르며 문상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슬픈 소식에 털퍼덕 주저앉는 인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동기간들, "ㅇㅇ야, 왜 이렇게 빨리 갔니."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는 절친, 가슴 아픈 이별의 현장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문상하는 사람도 상주들도 서로 조심스럽다. 아무 말 없이 따뜻하게 손 한번 꼭 잡아주면 그것으로 충분히 위로가 된다. 대범하라,너무 슬픔에 깊이 빠지면 가는 사람이 편히 가지 못한다는 말 등은 안 듣느니만 못하다. "늙으면 누구나 다 가게 돼 있어. 별나게 생각할 거 없어"라는 말에 가슴은 미어진다. 말이야 옳은 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죽음을 달관한 듯 멋있어 보이려는 위선일까. 말을 할 줄 몰라서 일까 오해를 하게 되고 자기가 당했어도 저럴 수 있을까 속말까지도 하게 된다.
그런데 선배들의 '햇과부'는 얼음물 맞은 듯 놀랍고 어휘는 거친 듯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 사랑이 전해지니 웃게 되고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정한 마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남편 은퇴 후 나의 대학 선후배 네 부부가 20여 년 동안 '청맥회靑麥會'라는 모임으로 해외 골프장에서 즐겁게 지냈었다. 우리 부부가 그 모임의 막내였다. 셋째 선배는 남편이 떠난 후 절친 동창을 룸메이트로 삼고 청맥회와 계속 함께했다. '햇과부'를 작명한 두 선배이다. 어느 해 필리핀 골프장에서 겨울을 지내고 있을 때 그들 옆을 지나다가 우연히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을 듣게 되었다.
"뭐 별로 잘나지도 않은 남편 세력 믿고 재고 있어."
그는 누군가의 흉을 보고 있었다. 어찌 저런 말을 할까. 분명 상처를 받았고 자신의 잘났던 남편이 그리워 외로움에 견디기 힘든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때 나는 이별한 지 오랜데 혼자서 당당하지 못하고 왜 저럴까 했었다. 그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과부 속은 과부만 안다'라는 옛말처럼 이제야 선배들의 그때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혼자가 되고 보니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늙어 멋없은 노인들이 꼭 붙어서서 과시하듯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유치하게 왜 이렇까 자책을 하지만 분명히 부러워서였다.
'햇과부'는 부르기도, 듣기도 민망한 어휘일 뿐 아니라 국어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말이다. 선배들이 슬픔에 빠진 후배를 웃겨주려고 처음 사용한 사제私製 신조어이다. 따지고 보면 슬픈 호칭이지만 우울의 벽을 깨고 순간 웃게 해준 선배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고마웠다.
혼자된 지인들에게 '햇과부'라고 불러주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웃음보를 터뜨린다. '동병상련'이라 그런지 따뜻한 위로로 받아들인다.
'햇과부~', 아직은 낯선 호칭이지만 이렇게 웃다가 소문나면 언젠가는 사전에도 올라가려나. 선배들의 놀라운 작명에 다시 한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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