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두멍 / 송옥선
항아리에 귀를 바짝 대 본다. 몸 전체를 열어 색색 고르게 쉬는 숨소리가 들린다.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쓰일 때를 기다려 온 배가 둥그렇게 부른 두 개의 항아리. 장독을 제대로 갖추어 놓을 수도 그 항아리를 놓아둘 부뚜막도 딱히 없는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에서 이 두 개의 항아리는 그동안 식구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항아리를 굳이 가보처럼 끌고 다니기를 고집하는 나도 그동안 쓸모로만 따지자면 우리 집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우기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사를 할 때면 귀중품이나 되는 것처럼 특별 대우를 하며 옮긴 까닭은 그 항아리에 의존해 살던 내 유년이 의식의 안쪽에 선명히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항아리를 떠올리며 다시 '그래, 이것이다' 무릎을 치게 된 것은 '숨'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숨 쉬는 항아리. 쓸모가 있느니 없느니 무생물 취급을 당해 왔던 그것이 죽은 듯 엎디어 숨을 쉬고 있었다니. 마치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강아지나 고향이에게 죽은 걸로 알고 일찌감치 곡기 공급을 끊어 버린 것 같은 미안함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불빛이라곤 닿지 않는 어둑한 시골집 부뚜막 구석에 금슬 좋은 부부처럼 서로 몸을 기대고 서서 가족들의 젖줄 구실을 했던 그 항아리를 우리는 물두멍이라고 했다.
주방이나, 화장실, 목욕탕, 심지어 베란다에서까지 꼭지만 돌리면 수돗물이 좔좔 쏟아지는 지금이야 따로 그릇에 물을 받아 두며 쓸 필요가 없겠으나 팔십여 호의 마을 사람들이 공동 우물 몇 개를 식수로 사용하던 그 시절엔 가가호호 부엌마다 물을 길어다 놓고 쓰는 물두멍 한두 개씩 챙겨 놓지 아니한 집이 없었다. 여명이 불그스름하게 까치물산을타고 오르는 이른 아침이면 물동이를 인 아낙들이 사립문을 밀치고 골목으로 나와 우물로 향하곤 했다. 우물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야 물두멍 한 개면 족할 것이나 우물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우리는 물두멍 한개로는 어림도 없었다. 부엌 한 쪽에 달린 광 속에도 커다란 물 항아리 하나가 있었으니 많은 양의 물을 항상 저장하고 있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결코 그 항아리를 물두멍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의 이름은 그냥 다른 염장독이나 곡식을 담는 독처럼 일반적인 이름으로 항아리 혹은 독이라고 불렀다. 물두멍이라는 고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그릇은 부뚜막에 올라앉아 있는 두 개의 항아리뿐이었다. 입을 뾰족하게 앞으로 내밀며 두 음절을 발음하고 나서 입을 동그랗게 열어 주면 물두멍! 하고 소리가 난다. 배부른 항아리의 모양처럼 넉넉한 음향이다.
글쎄, 다른 집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우리 집 물두멍은 화수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물두멍을 열고 바가지를 집어넣으면 언제나 전두리에 손목이 닿기 전에 바가지가 물과 만나는 미묘한 느낌이 전해지곤 했다. 손에 전해져 오는 느낌의 부피감으로 그 어둑한 구석의 물두멍에서 물을 떠서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면 정말 맛난 음식을 먹고 난 후처럼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입가를 손바닥으로 쓰윽 문지르고는 했다. 그 물두멍을 누가 채우는지 얼마나 힘겹게 채우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므로 고마운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냥 물두멍은 항상 물을 가득히 품고 거기 어둑한 구석 자리에 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 물두멍이 화수분이 아니라 어머니의 피땀이었다는 걸 안 것은 물동이를 이고 넘어져 어머니가 발목을 삔 다음이었다.
새벽이면 어머니는 눈을 뜨자마자 옆구리에 물동이를 끼고 한 손에 똬리를 들고 동네 앞 샘으로 향하셨다. 동이 가득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등 적삼은 넘치는 물에 흥건히 젖곤 했다. 저녁이면 들에서 돌아오자마자 물두멍부터 열어 보셨다. 그리고는 역시 동이를 끼고 나가 찰랑찰랑 물두멍이 찰 때까지 몇 번씩 물을 길어 나르셨다. 어머니의 일상인 물 긷기를 눈으로 번히 보면서도 물두멍의 물이 스스로 솟기라도 하는 듯 무심했던 것처럼 어머니의 노고 또한 그렇게 무심한 눈길로 보았던 것이다. 어머니의 발목이 나을 때까지 물두멍 채우는 일 때문에 우리 집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날마다 서로에게 물긷는 일을 떠넘기려고 머리를 굴렸으며 기껏 당번을 정해서 길어 온 물은 집에 당도하기 전에 찔름찔름 다 흘려 버렸으므로 팔 하나를 물두멍 속으로 다 내려 보내고도 바가지와 물이 만나는 소리를 듣기란 어려웠다.
내가 오학년이던 해 여름이었다. 그해의 가뭄은 유난히 길었으므로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인사가 물에 관한 것이었다. 물이 말라 논바닥이 쩍쩍 갈라진다느니 새벽 일찍 긷지 않으면 먹을 물도 없다느니, 등목을 하려면 밤에 동산재를 넘어가야 한다느니…….
그해에 아버지께서는 크게 용단을 내리셨다. 우리 집 우물터가 없다는 지관의 말을 믿고 먼 거리까지 왕래하며 우물을 길어 날랐었다. 그런데 동네 우물마저 바닥을 보이자 아버지는 공치는 셈 치고 일단 땅을 파 보자고 결심을 하신 것이었다.
"깊게 파면 나오겄지. 안 나오고 배겨?"
지관의 거드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셈은 단순하면서도 논리에 들어맞았다. 사방이 논과 물길로 싸인 외딴집인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에 어긋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설령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세 길인 앞 샘보다 두세 배 더 깊이 파들어 가면 분명 물은 나올 거라는 아버지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난 다음의 아버지는 당신 말씀에 더욱 확신을 갖고 공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앞 샘 정도의 깊이를 파고 나자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릎을 탁 치시며 그러면 그렇지 하고 득의에 차서 일꾼들을 독려했다. 지관의 말을 숫제 무시해 버리기엔 뭔가 찜찜하셨던지 앞 샘보다 좀 더 파고 난 다음 벽면을 둥그렇게 돌로 쌓아 올렸다. 우물 바닥에 주먹 크기의 돌을 몇 수레 퍼다 붓는 걸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아버지는 울안에 우물이 생긴 걸 기념하느라고 동네 잔치를 열었다. 두레박 가득 물을 길어 올려 벌컥벌컥 들이켠 동네 사람들은 속이 뻥 뚫린다는 말로 우물과 물맛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누구보다 속이 뻥 뚫린 사람은 그동안 물두멍을 채우느라고 새벽잠을 설치던 어머니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발목을 삐었을 때 잠시 앞 샘물을 길어 나르는 번거로움을 경험했던 우리들은 마치 부뚜막에 물두멍만 없었다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던 것처럼 그동안의 물두멍의 노고를 깡그리 잊고 당장 물두멍을 그 어둑한 부뚜막에서 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맛을 보고 나서 믿는 구석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그날 저녁 동네 앞 샘으로 물을 길러 가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돌확에 보리쌀을 갈아 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여러 번 헹군 다음 새 우물을 길어 올려 차랑하게 담가 놓으셨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가 믿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난데없는 외침에 식구들이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이것이 뭐여? 누가 여그다 먹물을 탄 것이다냐 뭐다냐?"
늘 자분자분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느닷없는 쇳소리에 식구들은 모두 달려 나가 어머니 앞에 놓인 보리쌀 함지를 내려다보았다. 노르스름해야 할 햇보리 쌀은 간데없고 검푸른 회색 빛 보리쌀이 퉁퉁 불어 있었다. 공고를 중퇴한 이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 집에서 가장 유식한 축에 드는 삼촌이 결론을 내렸다.
"철이 많구만."
역설적이겠으나 우물을 파고 나서 오히려 물두멍의 신분은 한층 상승되었다. 안동네 샘물만 길어다 먹을 때는 물에 대한 등급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울안에 우물이 생기고 나서는 앞 샘물은 일급수로서 식수나 흰옷을 빨 때에 아끼며 사용되었고 울안 샘물은 이급수로서 허드레로 마구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우물을 파고 오륙 년 뒤부터 귀한 신분의 물두멍이 마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물을 길어다 물두멍을 채울 손이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 후 보리쌀이 먹물 들인 것처럼 까맣게 변하거나 흰 와이셔츠가 먹장삼처럼 우중충해도 다시 앞 샘까지 오가며 물을 길어다가 물두멍을 채우려는 수고를 누구도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두멍은 더 이상 수태할 수 없는 자궁이 되어 바닥까지 파삭하게 말랐다. 그 집을 팔고 이사를 할 무렵 그 두 개의 물두멍은 집 모퉁이 굴뚝 옆에 있는 장독대에 다른 옹기들 몇 개와 섞여 여러 날 굶은 탓에 퀭하니 눈두덩이 꺼진 사람처럼 비뚜름히 쓰러져 있었다.
물두멍이네?
무슨 맘이 들어서였을까? 그 당시의 그 물두멍에 관한 애틋한 추억에서였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튼 크기가 똑같은 두 개의 항아리가 간장이나 된장을 담가 두기에 알맞다는 생각 외에 달리 품은 뜻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이사를 거듭할수록 칠 남매의 뼈를 키워낸 옛집이 애틋하게 떠올려졌고 기억을 더듬어 옛집 구석구석 따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물두멍이 있고 동굴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같은 그 청량감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갈증이 나서 부랴부랴 부엌으로 들어가 물두멍으로 손을 뻗었을 때 바가지 끝에 물이 닿는 순간 온몸에 전해지던 그 느낌.
베란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 항아리의 겉 표면에 마치 무수한 벌집 구멍처럼 작은 모형들을 이루며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처음에 항아리가 잘게 금이 가며 부서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항아리가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로 씻어내자 거미줄 같은 그 실금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혹시 새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으로 한가득 물을 채워 두고 관찰했으나 물은 한 방울도 새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으나 새는 것은 아니니 이보다 더 좋은 용기가 또 있으랴.
소리가 들린다. 한때는 물을 품었던 가슴으로 이제 매실과 솔잎을 품고 삭이는 소리. 보글보글 젖이 고이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앞 샘에서 물 길어 나르던 어머니가 보이고, 흘러넘친 물이 발뒤꿈치를 적실 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열 개의 발가락에 힘을 주었을 어머니의 발의 노고도 보인다. 한때는 어머니가 물두멍이었으나 언제부턴가 단아한 그 물두멍이 어머니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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