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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발/고경숙

에세이향기 2024. 7. 22. 04:19

아버지의 발/고경숙

 

 

가을날 오후,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따스하다. 햇살을 등에 지고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야윈 몸이 그림자처럼 고요하다. 짧은 바지 밑으로 드러난 아버지의 발은 까칠하고 거무죽죽하다. 깎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엄지발가락의 발톱 양끝은 살 속에 깊이 파묻혀있다. 살 속을 파고들어가 상처를 만드는 발톱이 문득 아버지의 피폐한 정신세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딱딱한 발톱이 살 속에 상처를 내는 것에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곤한 잠에 빠져있다.

아버지의 정신은 지금 어디쯤에 멈춰있는 것일까. 부처님 귀처럼 생긴 오른쪽 귀가 베개에 눌려있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아버지의 머리를 바로 놓아드리고 나는 아버지의 손등을 훑어본다. 창백해 보이는 손등에 굵은 핏줄이 도드라져 있다. 죽은 살들에 둘러싸인 손톱도 발톱 못지않게 자라나 있다. 손, 발톱을 깎아드리고 싶은데 아버지의 곤한 잠에 방해가 될까봐 꺼냈던 손톱깎이를 살며시 밀어놓는다.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잠이 든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어서 가슴이 아릿해온다. 곤한 잠속에 빠진 아버지의 옆모습을 보며 젊었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빨리 늙어서 힘없는 노인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라도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꿈에서조차 흐릿한 기억을 더듬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아버지의 꿈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내 상념이 깊어짐에 따라 아버지의 잠도 깊어지나 보다. 아버지의 머리가 베개 한쪽으로 툭 떨어지자 아버지의 긴 그림자가 잠깐 흔들린다.

일흔넷의 아버지는 일흔 다섯인 어머니보다 대여섯 살은 더 젊어 보인다. 주름살이 깊고 굵은, 해가 갈수록 작아지는 어머니 얼굴에 비하면 아버지 얼굴의 주름살은 엷고 가늘다. 언젠가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작아져버린 것 같아 어머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적이 있다. 그때 내 손에 만져진 건 주름 속에 묻힌 어머니의 아픈 세월이었다. “엄마 얼굴이 왜 이렇게 작아져 버렸어? 한주먹도 안 되겠네.” 내 말에 어머니 얼굴의 깊은 주름들이 탈처럼 허망하게 웃었다.

“나가 느그 아부지보다 빨리 죽으면 큰일인디…. 느그 아부지가 나보다 먼저 가야 할 것인디 아무래도 아닌갑다. 느그 아부지 식사하시는 것 좀 봐라. 으째 밥맛이 저리 좋은가 모르겄다. 나 없으면 느그 아부지 참말 불쌍할 것인디….” 요즘 들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자주 하신다. 그럴 때면 어머니 얼굴의 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어머니는 몇 달 전, 종합병원에서 눈과 목 부분 정밀검사를 받으셨다. 일흔다섯이 되도록 어머니는 병원을 모르고 사셨다. 간혹 일년에 두어 번 편도가 부어올랐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머니는 허허 웃어버렸다. 관절염과 신경통은 병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를 악착같이 만든 삶의 오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지쳐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어머니는 더 이상 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서둘러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셨지만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걱정했던 목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눈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평소 이물감과 눈물 때문에 힘들어하시던 어머니의 눈은 녹내장으로 시신경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면 약을 복용하고 안약을 사용하면서 주기적인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는 당신의 눈보다 서울을 오가느라 농사를 망칠까봐 더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어머니의 눈이 그렇게까지 나빠진 건 노환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로 인해 신경을 과도하게 소진한 탓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어머니가 왜 아픈지, 어머니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무심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세상은 영화속 한 장면 같은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각은 어느 한 시점에서 정지해버렸고 아버지는 정지해버리기 전의 생각만을 회상하고 되풀이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없으면 불안해하지만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이름은 알지만 자식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는 어느 때 웃어야 하고, 어느 때 울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눈물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이성 속에 깊이 숨어버린 지 오래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버지의 눈은, 그러나 안개처럼 흐려 있다. 아버지는 잘 웃는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진정한 웃음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웃음은 텅 비어있다. 빈 웃음 속에서 바람처럼 헛도는 아버지의 아픈 세월이 만져진다. 아버지가 의식하는 건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행위들과 머리를 다치기 전 오래된 기억들뿐이다.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아버지는 돈과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아버지는 신경안정제에 의존하여 그나마 조금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삶을 살고 계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된지 오래고 그 세월을 묵묵하게 살아오셨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삶에 대한 오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살게 한 힘은 희망도 의지도 아닌, 이를 악물어야 하는 오기였다. 어머니는 악착같았고 어머니는 치열했으며 어머니는 삶을 초월해버린 사람같이 살아오셨다. 해가 갈수록 어머니의 몸피는 작아지는데 보듬어야 할 생각들은 더 늘어나서일까. 그렇게 악착같던 어머니가 점점 지쳐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렸을 적,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 눈에는 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버지보다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어머니가 더 애처로웠다. 혼미한 정신으로 가족을 괴롭히는 아버지가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계셨다. 아버지의 외로움이 내 뼈와 살 속에 날카로운 발톱처럼 스며들었다. 눈물의 의미도 모르는 아버지가 내 가슴속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로 가슴이 흥건히 젖어들던 날, 나는 아버지의 등을 말없이 껴안았다. 따뜻한 아버지의 등이 내 식은 가슴을 데워주었다. 자식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도 할줄 모르는 내 아버지, 당신의 생각과 손발이 되어주고 있는 어머니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내 아버지, 감정도 이성도 잃어버린 아버지가 빗물처럼 가슴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아버지는 주무실 때 무슨 꿈을 꿀까. 나는 아버지의 꿈이 궁금하다. 부디 정신을 잃어버리고 난후가 아닌, 조금이나마 행복했던 이전의 기억들이 아버지의 꿈을 채웠으면 좋겠다. 살 속을 파고 들어간 아버지의 발톱을 깎아드리기 위해 수건을 펼치자 그 위로 맑은 햇살이 스며든다. 아버지의 발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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