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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젖 / 정서윤

에세이향기 2024. 7. 22. 21:39

젖 / 정서윤

 

 

저만치 걸어가던 어미가 다시 돌아온다. 낳아서 3주 동안 품고 있던 애를 내 품에 내어주고 직장으로 돌아가던 며느리였다. 와서는 누가 제 새끼를 빼앗기라도 한 것처럼 서러운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대더니 잠들어 있는 아기의 얼굴에다 종내는 눈물을 뿌리고 만다. 그런 어미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자 녀석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며느리의 안타까움을 지켜보기가 마음 아팠다. 보다 못한 내가 윽박지르듯 밀어냈다. "내가 잘 키울 테니 걱정 말고 얼른 가거라." 나도 새끼를 낳아 기른 어미인데 그 마음을 어찌 모르랴. 이제 겨우 돌아 나오는 젖을 가라앉히고 생이별하는 어미 심정이 오죽하랴 싶어 가슴이 메어져 온다. 내가 아무리 애지중지한다 한들 제 어미만 하겠으며 영양을 완벽하게 갖춘 분유라 해도 어찌 어미젖에 비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젊은 엄마들은 집에서 가사를 돌보며 아이를 키울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엄청난 양육비며 사교육비를 계산한다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요즘의 세대에서는 이러한 이별이 통상적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새끼들은 어미젖을 먹고 자라야 한다. 젖이 떨어지기 전에는 어미와 일심동체인 것이다. 어미는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유선乳腺의 통증으로 새끼가 젖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 새끼와 떨어져 있어야 하니, 여럿이 낳아 기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어미젖이 없다면 생을 부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생명이든 종족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젖이 있기 때문이다.

산길을 숨 가쁘게 달려가는 여인 앞에 호랑이가 길을 막았다. 그러나 여인은 호랑이가 막고 있는 길을 마치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여인에게 호랑이를 따돌릴 만한 기술이나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초능력의 힘이 있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는 배가 고파 울고 있을 새끼에게 젖을 먹여야겠다는 일념으로 집으로 달려가는 어미였던 것이다. 산골 화전민의 아내는 어린 아기를 방 안에 눕혀놓고 골짜기 밭에 일을 나갔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데 젖이 돌아 흘러내렸다. 그제야 어미는 애가 배고프다는 것을 알고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는 길에 호랑이를 만난 것이다. 배고픈 새끼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어미인지라 오직 새끼 생각에 그 어떤 장애물도 여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새끼를 지켜야 하는 강한 모성이 초능력을 발휘했는지도 모른다. 전해져 오는 옛이야기지만 새끼를 가진 모든 어미들은 죽음을 불사하는 본능을 말하려 한 것이리라.

최근 구제역이라는 전염병이 나라 전역을 휩쓸 때였다. 갑자기 전염병에 감염되었거나 주변에 사육되던 가축들이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살처분 되어 땅속에 묻혀야 했다. 당시 TV에 방영된 영상 하나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주사하면 3초 만에 쓰러진다는 근육 이완제를 맞은 어미 소에게 송아지가 다가와 젖을 빠는 것이었다. 그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3초 만에 쓰러저야 할 어미 소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느라 4분을 서서 버틴 것이다. 그리고 젖을 다 빨리고 난 뒤에 비로소 어미 소는 털썩하고 쓰러지는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새끼의 생명을 돌보는 것이 어미의 사랑이다. 모성의 본능은 짐승도 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일깨운 장면이었다.

아마존의 원주민 중에 여자들만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부족이 있다. 아기가 자라 여인이 되면 본능적으로 이웃 부족 남자의 씨를 받아 종족을 보존한다. 아이를 낳아 딸이면 경사가 난 것이고 아들을 낳으면 기를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었다. 아이를 만들어 준 남자를 사랑해서도 아니 되고 같이 살 수는 더욱 없다. 그곳에서 남자는 ​철저히 배제된다. 국영방송에서 그들을 취재했다. 부족의 딸인 열일곱 살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 불행하게도 아들이었다. 그곳에서 아들로 태어난 아이는 재앙의 씨앗이다. 철들기 전에 어미 품을 떠나보내야 했다.

젊은 어미가 풍만한 가슴을 풀어헤쳐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젖을 입에 문 해맑은 아이의 눈망울이 어미를 쳐다보다가 입에서 젖을 빼내고 웃는다. 내일이면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아이를 어딘가로 보내야 한다. 그리하면 모자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아이를 보내야 하는 날이 왔다. 족장과 아이의 할머니, 그 어미는 넓은 강을 가운데 두고 서 있다. 아이를 데려갈 강 건너에 살고 있는 부족 남자들이 어설픈 쪽배를 저어 강둑에 도착했다. 불안한 어미 맘을 눈치라도 챘는지 그날따라 아이는 힘차게 젖을 물고 어미의 커다란 눈 속에라도 들어갈 듯 쳐다보는 것이었다. 애간장이 시커멓게 타는 것은 족장도, 할머니도 마찬가질 터이다​. 그들이 겪어온 일이고 더군다나 젖으로 자식을 키운 어미임에랴.

어미젖을 물고 있는 아이를 할머니가 거칠게 떼 내어 배를 타고 온 남자들에게 던지듯 건넸다. 아이를 실은 배는 빠르게 노를 저어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젊은 어미는 젖을 내놓은 채 몸부림을 쳤다. 피를 토하는 울부짖음이 강물 위로 흐르고 있었다. 어미의 젖은 시간마다 돌아 흐를 것이다. 그때마다 생이별한 자식을 떠올릴 것이다. 그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젖을 먹이지 못하는 어미의 안타까운 심정은 새끼를 낳아본 어미라면 다 알 것이다. 젖 먹는 새끼를 어미 품에서 떼어 내는 것은 어미로서 겪어야 하는 가장 큰 형벌인 것을. 어미의 젖줄이 강물 따라 흘러 어딘가에 있을 새끼에게 닿기를 기원했다.

어미의 모습이 강물 같은 어스름 속으로 멀어진다. 며느리의 뒷모습 위로 아마존 여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것처럼 생이별이야 아니겠지만 가슴이 짠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다. 창밖에는 천지 만물의 젖줄인 봄비가 푸르게 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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