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 단청 / 강별모
단청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고궁이나 사찰에 가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공부하게 되었다. 붉을 단(丹) 푸른 청(靑)을 단청이라고 하는데, 어찌 붉고 푸른색만 있겠는가.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온갖 색을 동원해 그려낸 그림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단청은 건물의 벽이나 천장, 기둥 등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고 색칠하는 것을 말한다. 건축물 말고도 공예품, 고분, 불화, 동굴, 가구 등에도 단청으로 장식한다. 단청은 비록 장식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비바람이나 병충해에 갈라지고 썩어가는 것을 방지해 목재나 벽의 수명을 연장케 한다. 거친 표면과 상처를 감춰주는 역할뿐 아니라, 화재나 잡귀 등을 막아주는 상징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작품의 품위와 위엄을 갖추게 하는 것도 단청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사찰이나 고궁에 가면 단청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8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사찰이 있다. 바로 경북 안동에 있는 봉정사인데, 아담하게 자리 잡은 그 모습이 우리 어머니 품과도 같다.봉정사 앞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낙동강 상류가 지나고, 뒤로는 수령이 수백 년 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천등산이 있다. 우리나라 목재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는 입구부터 경관이 수려하다. 천혜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외침 한 번 당하지 않아 단청의 진수를 살펴볼 수 있는 사찰이다. 청정한 하늘과 태고의 자연이 잘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봉정사 목조건물을 보니, 서울에 두고 온 숭례문이 생각난다. 숭례문은 대한민국의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혼이 서려 있는 문화유산이다. 옆에 있을 때는 데면데면하다가 불타 없어진 뒤에야 애통해하는 심정을, 이곳 봉정사에 와서도 갖게 한다.오랜 풍상에 주름지고 갈라진 아름드리 나무기둥과 여기저기 검버섯 핀 돌계단을 보니, 세월의 경계를 얼마나 넘나들었을까. 한발 한발 돌계단을 오르며 팔백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심신을 수련하면서 국가번영과 백성의 안위를 염원했던 스님들의 행적이 봉정사 곳곳에 배어 있는 것 같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고승들의 엄숙함과 숭고함이 묻어나는 것 같아 옷깃을 여미게 했다. 건물은 아래에서 위로 지어 올라가지만, 단청은 건물을 다 짓고 난 다음에 위에서 아래로 작업한다. 단청은 빨강, 노랑, 파랑, 하양, 검정을 기본색으로 사용한다. 이는 우주만물이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고 생성과 소멸의 변화로 이뤄진다는 음양오행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단청의 원료로는 광물질, 돌, 흙, 소나무 송진, 옻나무에서 나오는 진액 등을 사용하지만, 요즘은 편리하게도 화학 안료를 쓰고 있다. 천연 안료로 쓰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쉽게 변색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실물처럼 생동감 있어 보인다. 그러나 화학 안료는 생동감과 안정감 없이 들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필요한 양만큼 만들어 쓰기 때문에 천연 안료를 구입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천연 안료로 봉정사 전체를 칠한다면 수십억의 돈이 소요된다고 한다. 언뜻 밖에서 보면 단청을 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여, 처음 방문한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봉정사 대웅전으로 들어가 확인하는 순간,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대웅전의 단청은 보고(寶庫)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문양과 기호들이 수없이 그려져 있다. 같은 그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 하나하나에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어 감상하는 내내 감탄을 쏟아내게 된다. 금방이라도 천장 우물반자에서 검붉은 연꽃이 한 아름 쏟아져 내려올 것만 같다. 천장에서 수없이 흘러내리는 연꽃 속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니, 꽃밭에 있는 기분이다. 연꽃무늬 안에는 불교의 관세음보살의 진언 ‘옴마니반메훔’이라 쓰여 있는데, 안료를 여러 번 칠해 입체적으로 보이기 위해 고분법을 적용한 것이다. 불탑 양옆 기둥에는 용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처럼 생동감 있어 보인다. 공포와 공포 사이의 포벽에는 다양한 불화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서까래와 부연은 고색단청으로 원형을 실감 나게 살려 놓았다. 동굴벽화, 고궁, 사찰, 상여 등에 색칠해 놓은 것을 보면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겉으로는 정결한 언행의 길을 걸으면서도 내면으로는 화려함과 멋을 좋아했던 우리 민족이었던 것 같다. 단청은 현세의 안녕과 건강을, 천세에 가서는 안락과 평화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단청으로 유명하다는 동서양 문화유적지를 몇 군데 둘러보았지만, 우리 봉정사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 단청이 섬세하고 정교할 뿐 아니라, 기술과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그리고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라는 데 더 의미가 있다.단청은 당시의 삶을 간접적으로 그려낸 예술이다. 팔백여 년 동안 훼손되지 않고 간직해온 봉정사, 앞으로도 그 모습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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