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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그래도 봄날이다 / 허석

에세이향기 2021. 6. 22. 09:04

늙어, 그래도 봄날이다 / 허석

 

“투투투투”, 사는 곳이 시골이어서인지 한여름에는 방역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골목길을 누빈다. 뽀얀 연기 속을 두 팔 휘저으며 신나게 달음박질하던 어린 시절 그 아이를 먼 풍경처럼 읽는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익숙해 시간보다 빠르게 살았던 나이였다. 시간이 동무하며 걷던 꿈 많은 청춘도, 앞서만 가던 시간을 쫓고 쫓기며 바쁘게 살던 장년의 나이도 지났다. 노년에 한발 다가선 이제는 세월을 앓는 통증만이 덜컹덜컹 걸음마다 소리 지르며 가는 봄날 붙들고 있다.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걷는 것도 조심스럽고 행동도 민첩하지 못하다. 지각능력도 떨어져 실수도 잦아지고, 감각기관이 낡았는지 위험에 적극 반응하지도 못한다. 가벼운 산책에도 쉽게 지치고, 무거운 물건 앞에서는 근력도 형편없다. 면역력도 부족해 걸핏하면 병에 노출되기 일쑤다. 한마디로 몸이 내 뜻과 마음과 따로 논다.

늙으니까 모든 것이 시큰둥해졌다. 세상에 대한 눈길도, 호기심도 형형한 맛이 없어졌다. 사랑이나 의리, 순수 같은 낭만적인 단어들과도 자꾸만 멀어진다. 정의니, 이데올로기 논쟁도 이젠 지쳤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어렵고 골치 아픈 일보다 편하고 쉬운, 즐거운 분위기를 더 쉽게 찾게 된다. 관용의 폭이 넓어졌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열정이 부족해진 것 같다.

거울을 본다. 쇠골 빠진 얼굴이 초라하고 낯설다. 머리가 많이 빠져 이마가 훤하고 백발이 성성하다. 무엇보다 표정이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눈매도 매서워지고, 주름지고 굳은 얼굴이 좀처럼 풀리지가 않는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너그럽거나 온화한 것과도 거리가 먼 무표정한 사내다.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노인들이 갑자기 화를 내고 소리를 뻑뻑 질러대는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무도 나를 어른으로 공경하지도, 세상 이치를 잘 아는 선배로 대우하지도 않는다. 마음은 아직도 젊고, 전문가적 경력도 여전한데 아무래도 늙었다고 무시하는 것만 같다. 다른 나라들처럼 전쟁 폐허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세대’로 존경받기는커녕 나이 들어 추하고 약한 것이 죄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왕년에 팔팔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나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고 상실감이 든다. 괜히 억울해진다. 내가 젊었을 때는 상사를 깍듯이 대접하고 어른도 반듯이 모셨는데 정작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신세대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사회적 규범과 가치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부와 명예만 공경하는 젊은 세대에게 실망스럽다.

멋있는 노인 되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더 온순해지고, 너그러워지고, 현명해지는 게 당연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딱딱해지고, 불만도 많아지고, 양보하기 싫어지는지 모르겠다. 몸만 느려졌을 뿐이지 욕심은 더 급해진 모양이다. 걱정해야 할 것은 몸의 가령취가 아니었다. 청안시를 가져 이웃을 따뜻한 눈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편견과 차별과 호오의 대상으로 백안시하는 태도는 아직도 여전하기만 하다.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받아야겠지만 그것을 노인의 특권이나 무기로 삼고 싶지는 않다. 특히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나 공공장소에서 폐해를 주는 일은 나도 싫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을까 생각하면 대신 송구해지는 마음이다. 종교를 오랫동안 가졌다고 해서 신앙심이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많이 배웠거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 사람의 언행이 삶의 정답은 아닐 것이다.

마을에 노인 한 명이 도서관 하나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은 옛말이다. 주변에서 공경할 만큼 덕망과 인격을 갖춘 노인이 되는 것은 결국 본인에게 달린 일이다. 인생의 다섯 가지 복 중에서도 ‘좋은 덕을 닦아 남에게 베푸는 유호덕攸好德’이 제일이 아니까 싶다. 아무리 깨끗한 물로 채워도 속이 보이지 않던 연못이 가을이 되면 티끌까지 보일 만큼 저절로 맑아지듯이 만추의 삶도 온전하고 정갈해졌으면 좋겠다.

이제 나이가 들어 귀찮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쓸쓸해진다. 하지만 힘을 낸다. 젊지 않으면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다시는 당당해질 수 없을 것 같아서가 아니다. 봄날이 가고 남은 오후,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에서처럼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하루의 일을 끝낸 가장 좋은, 눈부셨던 대낮과 소리와 빛깔이 다른,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사는가가 앞으로 중요한 일이다.

화려했던 젊은 날에서 깨어나 지금은 노년의 시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욕심내기보다 비우는 시간이고, 내세우기보다 공감과 양보의 시간이다. 겉보기에 신경 쓰지 않고 사는 편안함,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는 것에 목매달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누려야 할 때다. 휴식도, 여유도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이 노년기를 자아통합의 시기라고 말했듯이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의 정체감을 새롭게 정립하여 자아실현의 기회가 되는 것도 좋겠다.

지금까지의 삶이 수직과 수평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약간의 기울기도 허용하고 싶다. 직선을 버리고 황소 등짝 같은 곡선으로 살고 싶다. 부자라고 다 악하고, 가난하다고 다 착한 것만은 아니더라. 토마스만의 《마의 산》처럼 “무한한 공간 속에서 좌우가 어디 있으며, 영원한 시간 속에서 앞뒤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미도 이제야 알겠더라.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선善한 생각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이 노인으로 잘사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어차피 시간은 간다. 늙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웃음이 많아진다는 일이다. 둥글고 순한 웃음으로 산다면 늙어 지금도, 여전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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