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無罪 / 김애자
훅훅 달아오른 지열이 턱에 닿는다. 푸르스름한 새벽너울을 쓰고 전답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촌부들은, 점심 끝에 감겨오는 나른함에 만사 제쳐놓고 오수에 든다. 진도견도 헐떡거리며 내려감기는 눈꺼풀을 어쩌지 못하겠는지 꾸벅 고개를 떨군다. 풀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도 없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산촌의 고즈넉함을 깨는 것은 오로지 팔풍받이 느티나무 가지에서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 울어쌓는 매미들과, 개울 건너 돌무지를 둘러싼 두충나무 숲에서 '홀딱자빠졌다. 홀딱자빠졌다. 쪽박바꿔줘' 두견새의 별쭝스러운 애원가 뿐이다.
평화스럽다 못해 권태롭기조차 한, 이 한낮의 풍경은 겉모습만 이러할 뿐이다. 안으로 눈길을 돌리면 쫓기고 쫓고 먹히는 싸움이 치열하다.
지금도 백로 두 마리가 시루봉 쪽에서 훨훨 날아와 집앞 논배미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녀석의 긴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가늘고 긴 목선이 유연하게 흔들린다. 갈매빛 산빛과 윤기 잘잘 흐르는 벼 포기를 배경으로 실경산수화의 구도가 기막히다. 하지만 백로가 논에 날아와 앉은 까닭은 기막히게 짜여진 실경산수화 한 폭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꼬리를 떼어낸 지 서너 달 가까이 된 개구리들을 잡아먹고자 날아온 것이다. 저 것이 유유자적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마다 개구리들이 어마지두 쫓겨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자품이 얼마나 위협적인가 상상하고도 남는다.
백로는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묵객들에게 시화제(詩畵題)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저 새도 별수 없이, 개구리는 말할 것도 없고 수서곤충들에서 들쥐에 이르기까지 산채로 잡아먹고는 천연덕스럽게 소나무 위에 올라앉아선 질펀하게 똥을 내질러 놓는다. 그 배설물이 얼마나 독한지,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서도 ‘나 여기 살아있노라’고 뽀얀 얼굴 내밀고 나와, 폐허에서 헤매던 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쑥도 맥을 못 춘다. 천 년 학도 먹고 싸대야 사는 생리적인 현상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먹이를 찾아다니는 걸음새나, 또 날아가는 품새나, 외다리로 서서 먼산바라기를 하는 자태가 하도 우아해 보이기에, 잠시 트집을 잡아본 것이다.
그림 같은 한 낮의 풍경화 속에서 나는 두어 시간 전부터 머루덩굴 아래서 바장인다. 말벌을 잡기 위해서다. 머루덩굴 그늘이 깊다고는 하나 워낙 더위가 찜통으로 쪄대니 목과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한다. 그렇지만은 우리 집 벌을 지키기 위해 오른 손에는 배드민턴 채를 잡고, 왼 손에는 ‘홈키파’를 들고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며 바장이는 것이다.
드디어 말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방금 전, 노르스름하게 동이 선 상추밭으로 도망갔던 놈이다. 기어이 잡고 말겠다고 서슬을 퍼렇게 세우고 휘두르는 배드민턴 채에 혼줄이 빠지게 줄행랑을 쳤다가 다시 온 것으로 보면 처지가 어지간히 다급해진 모양이다. 하긴 보름가까이 장마가 진 끝이고 보면 여왕벌에게 상납할 양식이 떨어졌을 법도 하다. 그러니 죽기를 각오하고서라도 먹이를 구해가야만 문지기들에게 박대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여름철만 돌아오면 벌에게 번지는 석회병을 예방하기 위해 스티로폴을 포갬포갬 쌓고 벌통을 올려놓는다. 놈은 조금 전에 받았던 기습을 상기해서인지 벌통 앞에서 비상을 낮추고 앉을 듯 말 듯 망설이다가 파르르 날개를 떨며 몸의 균형을 잡는다. 바로 이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발꿈치를 들고 가만가만 다가가선 사냥꾼이 목표물을 조준하듯, 궁수가 할시위를 잡아당기듯, 배드민턴 채에 온몸의 기를 모아 내리친다. 그런데 어느새 놈은 날쌔게 피해 굴타리 먹은 외밭에서 붕붕 날고 있다. 참으로 민첩하다. 내가 다섯 번 싸워 두 번밖에 승전고를 울리지 못하는 것도 나는 놈의 기민함을 따라잡지 못해서다.
그런데 벌을 잡지 못하고 헛손질만 하면 팔이 된통 아프다. 고 작은 것에도 기가 있어 배드민턴 채에 맞으면 기와 기가 부딪쳐 아픈 것을 모른다. 하지만 구사일생 저렇게 살아서 달아나면 어깨와 팔로 내려 뻗은 신경과 인대가 쩌릿쩌릿하다. 필시 살의를 품고 내리친 힘의 탄력을 자업자득으로 되받은 탓일 게다. 지난해에도 놈들을 잡고자 수없이 헛손질을 해된 바람에 인대가 늘어나 겨우내 고생을 했었다.
말벌은 장마가 끝나면 어김없이 출현한다. 덩치가 큰놈은 작심하고 벌통 앞에 앉아선 주둥이로 문지기는 물론, 꿀을 물고 들어오는 일벌까지 닥치는 대로 사그리 목을 잘라 놓는다. 또 어떤 놈들은 먹이를 물고 날아오는 벌까지 공중에서 낚아채 버린다. 잔인하고 무례한 폭력배들로부터 벌을 지켜주지 않으면 3만 마리 벌 한 통이 전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한데 언제까지나 놈들의 기민함에 골탕이나 먹으면서 부지하세월 머루덩굴 밑에서 바장거릴 수만 없는 노릇이다. 묘책을 강구해 보았다. 우선 복숭아와 금싸라기 참외를 하나씩 깎아 벌통과 내가 앉아 있는 중간지점에 놓아두었다. 적들이 단내를 맞고 날아와 주기만 하면 일망타진하는 전과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쓴 묘책이 성공할 조짐을 보인다. 말벌 한 마리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는지 과일 접시 위로 살짝 내려앉는다. 굴타리 먹은 외밭으로 날아갔던 놈은 아니다. 두 번씩이나 혼비백산 경을 쳤는데 지깟 놈이 무슨 배짱으로 또 얼씬거리겠는가. 이번에는 몸집이 좀 작은 녀석이 금싸라기 참외에 침을 박고 과즙을 빤다. 꽁지를 치켜올리고 한참 먹이를 삼키더니 그만 되었다 싶은지 ‘붕’ 날아오른다. 분명 제 동지들에게 멋진 춤사위로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일단 집으로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내 추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윙--잉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세 마리가 한꺼번에 내려앉는다. ‘옳거니’ 쾌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숨소리를 죽임은 물론이거니와 손가락 하나 옴나위 않고, 한 스무 마리쯤 모여 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 볼 참이다. 그 사이 두 마리가 충분하게 과즙을 삼켰는지 먼저 자리를 뜬다. 10분도 채 못되어 접시에는 일 곱 마리나 되는 말벌이 죽음의 사정거리 안으로 몰려든다.
고것들 하는 짓이 가관이다. 어떤 놈은 참외에, 어떤 놈은 복숭아에 머리를 쳐 박고 먹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가 하면, 괜히 설설 돌아치며 직무를 유기하는 녀석도 있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하층 미물들이건 간에 먹이가 풍족하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오랜만에 풍족한 먹이를 놓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저 안쓰러운 것들을 정말로 살의로 작살을 내야 하는가? 심경이 매우 착잡해진다.
이런 와중에 도랑 가에선 개구리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뱀의 아가리에 서서히 제 몸뚱이가 먹혀들어 가는 개구리의 절박한 비명에 소름이 돋는다. 오늘은 왜 이렇게 개구리들이 수난을 겪는지 모르겠다.
어쩔 것인가. 혼란스럽다. 돌을 들고 쫓아가 뱀에게 던져볼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가 던진 돌이 뱀의 급소를 친다고 해도 어차피 개구리는 살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강자에게 약자가 먹히는 것이 생태계의 질서라면, 뱀에게 돌을 던져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나도 벌을 잡겠다고 참외와 복숭아로 벌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있으면서 말이다.
안쓰러운 마음을 애써 밀어내고 앞을 보니, 그 새 열 대여섯 마리나 되는 벌들이 몰려와 있다. 저것들을 잡지 않으면 우리 집 벌들이 수없이 죽어갈 것이므로 부동자세를 풀었다. 오금이 저리었지만 접시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힘껏 배드민턴 채를 후려쳤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잽싸게 홈키파를 사정없이 뿌려댔다. 순식간에 접시에 앉은 벌들이 참혹하게 죽어갔다.
벌들의 시체를 물에 씻어서 구새먹은 느티나무 밑에 버렸다. 나무 구멍 속에는 왕개미들이 살고 있다. 바라던 대로 일망타진하는 전과를 올렸는데 마음은 천근이다. 배드민턴 채와 홈키파를 창고 안으로 던지며 소나기 맞은 스님처럼 중얼거린다.
"모든 것이 무죄, 무죄로다.
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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