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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꽃게백정/전성옥

에세이향기 2021. 6. 24. 09:00

꽃게백정 / 전성옥

 

나는 백정이다. 꽃게백정이다. 삶아 죽이고, 얼려 죽이고, 절여 죽인다. 그러고도 모자라 또다시 부관참시, 능지처참의 형을 더한다. 무쇠연장으로 자르고 베어낸다. 참으로 유능하다.

초보주부 때이다. 요리상식에 귀를 빠끔히 열 즈음이다. 들은 대로 게를 살아있는 채로 사왔다. 염수 생물인 그들은 담수에 닿자 숨이 막혀 반쯤 넋을 놓는다. 늘어진 그를 도마에 올리고 칼을 든다.

그가 몸을 움직인다. 비척비척 열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도망을 간다. 다시 끌어다 놓고 칼을 든다. 소리, 다각…… 다각…… 그들의 집게발이 칼에 닿는 소리. 내려치려는 칼을 두드린다. 멈추세요, 멈추어 주세요. 스윽, 칼금이 그어진다. 칼금은 그들의 등이 아닌 내 가슴에 그어진다. 가슴을 베인 나는 칼을 내려놓는다.

물끄러미 게의 등짝을 바라본다. 성냥개비 같은 게의 눈 두 개가 나를 올려다본다. 세상에…… 이 무슨 잔인한 처사이며, 이 무슨 절박한 상황인가.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이들의 삶을 한순간이라도 빨리 끝내주는 것이 선행이고 보시이다. 하지만 가슴에 칼을 맞은 망나니의 손은 칼을 다시 쥐지 못한다.

그들을 냄비에 담고 가스불을 올린다. 연옥이다. 잠시 후 그들은 빨갛게 죽었다. 열 개의 다리를 뻣뻣하게 들고서…… 얼마나 놀라고 고통스러웠을까. 청량한 바다의 밑바닥에 살던 자신들이 이렇게 뜨겁게 죽어갈 거라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연옥에서 죽어가며 돌아보았을 것이다. 내가 언제, 뉘 집의 무엇을 훔쳐 먹었던 적이 있었나 하고.

주부에게 신선하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다. 나는 또 활게를 사온다. 이제는 얼려 죽인다. 사오는 즉시 냉동실에 넣는다. 두어 시간 뒤 그들은 파랗게 죽었다. 마디마디 다리들을 깍지 끼고서…… 얼음지옥에서 죽어가며 헤아려 보았을 것이다. 내가 언제 탐할 수 없는 이를 탐한 죄를 지은 적이 있었나 하고.

못할 짓이었다. 하여, 근래 들어서는 활게를 살 때 파는 이에게 그들의 목숨을 앗아 달라 부탁을 한다. 파는 이는 의아해 한다. 신선도를 위해 활게를 사면서 구태여 죽여 달라는 이유가 무엇이냐 되묻곤 한다. 나는 그저 웃는다. 답을 할 수도 없다. 이 나이에 무서워 그런다면 내숭이라 할 것이고, 죄책감이라고 하면 지금 칼질을 하는 그들을 능멸하는 처사다. 파는 이는 칼질을 하며 혼잣말을 한다. 맛있는 내장이 다 쏟아진다. 살이 흐르겠다. 나는 그 말을 등으로 듣는다. 등딱지가 벗겨지고 버둥대는 다리를 탁탁 잘리며 죽어가는 게들의 모습이 보아내기 힘들고,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생명들을 조금의 긍휼도 없이 단호하게 처단하는 칼쟁이들의 모습도 보아내기 힘들다. 그가 비록 나를 대신하여 이 살육을 자행할지라도 말이다.

집에 돌아와 흐르는 물 아래서 게들의 가슴을 잡아 뜯어 씻으며 어이없는 착한 척을 한다. 숨을 쉬었을텐데, 이 보드라운 날개미로 숨을 쉬었을 텐데. 꽃게는 말한다. 가증스레 굴지 말아라.

무엇이거나 목숨을 앗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 세상에 숨을 타고 태어나 한동안 같이 호흡하던 생명을 끊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이 일을 해 줄 사람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들이 백정이다. 그들은 천대와 멸시를 받아가며 묵묵히 생명을 앗아낸다. 앗아낸 그 생명으로 또 다른 생명을 살려낸다. 고마운 이들이다.

지난날,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백정에겐 이름이 없었고, 호적도 없었으며 인구수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상투를 틀 수 없었고 남의 집 종이나 아이를 포함한 모두에게 존댓말을 써야했다 길을 걸을 때도 허리를 구부리고 겅중겅중 뛰어다녀야 했으며, 심지어 백정의 아내는 겁탈을 당해도 가해자에게 죄를 묻지 못했다. 임금의 수라상에 고기를 올리는 이도 손가락질을 면하지 못했다.

현대에 와서 백정이란 단어는 역사나 이야기책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도처에 백정은 존재한다.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 꺼리는 일을 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이, 주검을 만지는 이, 하수도를 청소하는 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어디에서라도 하루의 품을 파는 이 등이 그들이다. 그럴싸한 직함으로 불리고 이전의 백정처럼 그런 하대를 받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대한다. 이성으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나보다 직업 신분이 낮은 이들과 연을 맺거나 동사同舍를 하라고 하면 이를 기꺼워 할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돌아보면 아찔한 일 아닌가. 만일 그들이 나보다 더 배웠거나, 나보다 더 유능했거나, 나보다 하늘의 뜻을 더 많이 받았더라면 그 일은 그가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힘든 노동을 하고 적은 보수를 받으며 사람 그 자체까지 하대 받는 상황은 그가 아닌 나의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라고 어찌 나보다 덜 배우고, 나보다 덜 유능하며, 나보다 하늘의 뜻을 덜 받고 싶었겠는가. 또 어디선가 나를 두고 아찔한 일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는 어찌 없을 것인가.

빠각 빠각 등딱지가 벗겨지는 소리, 탁! 탁! 도마를 내려치는 소리들을 등으로 듣고 서 있다. 속으로 말한다. 저 살육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아니했다. 그러나 게를 죽이지 못해 시장 상인에게 내 업을 뒤집어씌우며 면피를 했다고 생각하는 나는 과연 내 생각처럼 그렇게 선한 이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더 교묘한 악인일지도 모른다. 나를 대신해 칼을 내려치는 상인은 돌아선 내 등을 보며 말할지도 모른다. 가증스레 굴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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