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안태현
파스 좀 붙여다오
아흔일곱 노모가 퉁퉁 불어서 생의 물금이 희미해진 푸르스름한 발목을 내밀었다
가출한 내 행방을 찾아 불갑사 일주문까지 한걸음에 내달리고 눈보라 치는 날 종종거리며 장꾼들 국밥을 말던
그 발목이었다
한국동란 피난길에 죽을 고비가 몇 번 있었는데 어린 자식을 안고 쇳덩이처럼 무겁게 끌고 가던
그 발목이었다
해방되던 날 거리에 나가 목이 쉬도록 만세를 부르더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것도 몰랐던
그 발목이었다
일본 순사에 쫓겨서 겨울 바닷가 채취선에 고양이처럼 숨어들어 있다가 담배 보따리와 함께 석고처럼 굳어버린
그 발목이었다
이제
더는
발목 잡힐 일 없는
삭정이 같은 마지막 발목이었다
[출처] 발목 / 안태현 |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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