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발목/안태현

에세이향기 2021. 7. 30. 14:16

발목


안태현


파스 좀 붙여다오


아흔일곱 노모가 퉁퉁 불어서 생의 물금이 희미해진 푸르스름한 발목을 내밀었다


가출한 내 행방을 찾아 불갑사 일주문까지 한걸음에 내달리고 눈보라 치는 날 종종거리며 장꾼들 국밥을 말던
그 발목이었다


한국동란 피난길에 죽을 고비가 몇 번 있었는데 어린 자식을 안고 쇳덩이처럼 무겁게 끌고 가던
그 발목이었다


해방되던 날 거리에 나가 목이 쉬도록 만세를 부르더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것도 몰랐던
그 발목이었다


일본 순사에 쫓겨서 겨울 바닷가 채취선에 고양이처럼 숨어들어 있다가 담배 보따리와 함께 석고처럼 굳어버린
그 발목이었다


이제
더는
발목 잡힐 일 없는


삭정이 같은 마지막 발목이었다
[출처] 발목 / 안태현 |작성자 마경덕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초보은結草報恩/방윤후  (0) 2021.07.30
개똥쑥/한희숙  (0) 2021.07.30
빨래/김혜숙  (0) 2021.07.30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박형준  (0) 2021.07.30
폐타이어/함민복  (0) 2021.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