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에 대한 단상 / 정성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쓸 영정 사진을 걸려고
안방 벽에 못을 박았다
못머리를 쳐대자
콘크리트 벽은
아직은 못을 받아드릴 때가 안 되었다는 듯이
구부러지고 만다
못을 바르게 세워 쳐 댈수록
제 몸의 상처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벽
사정없이 망치질을 해 대자
못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이
날카로운 끝을 생살에 받아들인다
올곧게 서 있는 못에
아버지의 일생을 걸어두자
굽은 못도
바로 세워 주기만 하면
제 할 일 다 할 수 있다고
자존심을 세운다
참 다행이다
작은 못 하나가
방안에서는 영정사진걸이가 되고
부엌에서는 냄비걸이가 되고
뒤안 벽에서는
삽걸이 호미걸이가 되다니
못의 위대한 힘이 꽃으로 피는 것이었다
[출처] 제3회 건설문학상 / 황보람, 정성수|작성자 ksujin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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