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똥 / 안광숙
멸치 똥을 깐다
변비 앓은 채로 죽어 할 이야기 막힌
삶보다 긴 주검이 달라붙은 멸치를 염습하면
방부제 없이
잘 건조된 완벽한 미라 한 구
내게 말을 걸어온다
바다의 비밀을 까발려줄까 삶은 쓰고
생땀보다 짜다는 걸 미리 알려줄까, 까맣게 윤기 나는 멸치 똥
죽은 바다와
살아 있는 멸치의 꼬리지느러미에 새긴
섬세한 증언
까맣게 속 탄 말들
뜬눈으로 말라 우북우북 쌓인다
오동나무를 흉내 낸 종이관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
사람들에게 팔려온
누군가의 입맛이 된 주검
소금기를 떠난 적이 없는
가슴을 도려낸 멸치들 육수에 풍덩 빠져
한때 뜨거웠던 시절을 우려낸다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뼈를 남기고
객사한 미련들은 집을 떠나온 지 얼마인가
잘 비운 주검하나 끓이면
우러나는 파도는 더욱 진한 맛을 낸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의 책을 읽다 / 이문정 (0) | 2022.11.19 |
---|---|
폐선 / 정순 (0) | 2022.11.19 |
제비꽃인력소 / 한주영 (1) | 2022.11.15 |
못에 대한 단상 / 정성수 (0) | 2022.11.15 |
서녘의, 책 /박기섭 (0) | 2022.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