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인력소 / 한주영
톱밥을 집어 던지는 목장갑에
잠시 온기가 돋았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제비꽃 인력사무소
수많은 이름들 중에 왜 하필 제비꽃일까
물에 잘 섞이지 않는 기한 지난 시멘트 반죽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인부들이 불 앞에 모여 있다
이곳에서 김 차장이라 통하는 김이
불쏘시개로 드럼통을 쑤시자
부서진 삭정이들 사이에 박혀 있는 못들이
불을 더 세게 쥐며 휜다
쑤시는 곳이 많아도 파스 한 장으로 봉합된 어깨에
화끈거리는 새소리가 조잘조잘 앉았다가 가고
김은 코에 묻은 검댕을 제 검지로 연신 문지르며
인부수첩을 넘긴다
동이 틀 듯 긴장한 가건물 사이의 허공이
쓴 구름에 휩싸여 흐리게 빛을 풀고
때마침 수첩 페이지를 넘기자 바스락거리던 이름들
종이 끝이 나무였을 적을 기억하려
습기를 그러모아 문드러진다
그늘이 깊던 인부들의 낯빞 위로는 새벽달이 먼저 기우는 것
틈이 되는 낮은 곳마다 제 발을 들여놓는 제비꽃이
결국에[는 비상하는 모습으로 꽃을 틔우는 것처럼
김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맞춰
머쓱한 얼굴로 수첩 속으로 휘갈겨 쓰인 인부들의 하루는
꾹꾹 눌러 씨앗처럼 눌러 적힌다
그간 이 수첩의 두께가 빌딩을 세우고 집을 지었다
나눠 피던 담배 연기 속에도
오늘과 같은 여러 날의 새벽과 함께
먹줄을 튕기던 벽이 있어
비를 머금고 있던 구름이 천천히 물러나
곧 동이 튼다
그제야 간판 불을 내려오는 제비꽃 인력사무소
자줏빛 꽃자리가 굽은 등처럼 휘는 모습이
김의 동공 위로 차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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