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8/18 2

물체주머니의 밤/김지녀

물체주머니의 밤보이는 것을 집어삼키기 위해내 몸의 절반은 위가 되었다 가끔헛배를 앓거나묽어진 울음을 토해냈지만송곳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내벽의 주름들은쉴 새 없이 움직이며굶주린 항아리처럼 언제까지나 입을 벌리고 있다 안쪽으로 쑥, 손을 넣어 악수하고손끝에 닿는 것들을 위무하고 싶은, 밤나는 만질 때에만 잎이 돋는 나무 조각이거나따뜻해지는 금속에 가깝다내 안에 꽉 들어찬 것은 희박하고 건조한 공기기침을 할 때 튀어나오는 금속성 소리날카롭게 찢어진 곳에서, 푸드득 날아간 새는 기침의 영혼인가한 문장을 다 완성하기도 전에소멸하는 빛과 밤, 사이에서나는 되새김질을 반복했다, 반복해도소화되지 않는 나의 두 입술사물들의 턱뼈가 더욱 강해진다밧줄처럼 허공에 매달린 나는 공복이다김지녀· 2007년 「세계의 문학」 데..

좋은 시 2024.08.18

시간의 무늬/김훈

시간의 무늬/김훈 시를 쓸 수 없는 나는, 어떤 시인이 그 뻘밭에 새겨진 시간의 무늬를 시로 써 주기를 바란다. 실체가 주는 치매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는, 실체 앞에서 언어를 그리워하고, 언어 앞에서 실체를 그리워한다. 나는 해독되지 않는 시간의 그림자를 버리고 다시 언어 쪽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 편이 훨씬 더 아늑하고 편안할 것이었다. 그 여름에 나는 최하림의 새 시집 「풍경 뒤의 풍경」을 읽었다. 최하림의 시들은, 내가 그 시들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 시들이 나에게 흘러들어온 것처럼 내 마음에 스몄다. 최하림의 시들은 시간의 본질을 말하지 않는다. 최하림의 시들은 시간의 실체에 닿을 수 없는 격절감을 쓰라리게 토로하지도 않는다. 최하림의 시들은 그 격절감이 주는 거리를 거리로서 긍정하면서, ..

좋은 수필 2024.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