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8/16 3

그 남자 이야기 / 김희자

그 남자 이야기 / 김희자    ​  기도 같고 통곡 같고 절규 같은 비가 내린다. 누가 이 구불구불한 생에 주석을 달 수 있단 말인가. 버리고 싶은, 돌아보고 싶지 않은 쓰라린 기억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그림을 만든다.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했다고 참된 삶을 그리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통보다, 통증보다 더 잔인한 한 남자의 마지막 생을 보았다. 젖은 도로 위의 차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질주하지만 나는 장례식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섰다. ​  조등이 걸린 저 안에서 그 남자가 영원히 잠들어 있다. 슬픈 날에는 눈을 감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울고 나면 나는 바닥을 본다. 모두 죽었거나 사라진 곳이 바닥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육신이 짜낸 눈물이 바닥에 뒹군다. 상처를 안으로 들이는 것들은 소리가 ..

좋은 수필 2024.08.16

죽 쑤는 여자 / 남태희

죽 쑤는 여자 / 남태희     “이것 좀 먹어봐 동서, 어서” 도리질 치는 내 입에 억지로 숟가락을 넣었다. 며칠째 물만 마시고 있던 내게 형님은 울 듯한 표정으로 다그치고 있었다. 멀리서 녹두죽 한 냄비를 쑤어 달려온 정성과 진정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보면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껄끄러운 입안에 부드러운 죽 알갱이들이 퍼져갔다. 슬픔의 덩어리들을 꾸역꾸역 같이 삼켰다. 어린 것을 잃고 널브러진 스타킹처럼 누워 있던 난 그날 이후 다시 얼어서고 있었다. 죽은 곡물 음식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쌀, 보리, 녹두 등의 곡물에 물을 대여섯 배 부어 무르게 만든 음식이다. 오래 끓여 부드럽고 무르게 된 음식이기에 정상인보다는 기력이 쇠한 환자가 먹기에 좋다. 이렇게 고마운 음식이건만 죽에 관한 속담은 그..

좋은 수필 2024.08.16

베개 / 엄옥례

베개 / 엄옥례   무언가가 나를 부른다. 남편 쪽으로 손을 뻗으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마음만 허우적거리다가 가까스로 깨어난다. 길게 한숨을 쉬고 가슴을 쓸어내려도 놀란 심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옆을 바라보니 휑한 기운만 감돌고 베개만 덩그러니, 내 곁에 남편이 없음을 알린다. 남편과 부부의 연을 맺을 때,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조건이나 배경은 그다지 따지지 않았다. 그저 베개 하나에 머리를 맞대고 같은 꿈을 꾸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외모는 달라도 남편과 나는 지향점이 비슷했다. 그래선지 이불 한 겹에 베개 하나일지라도 원앙금침이 부럽지 않았다. 꽃잠은 봄날처럼 달콤했다. 시간이 흘러, 사랑이라는 마취가 약효를 다하자 하나의 베개에 두 사람의 머리를 얹는 게 점점 불편해지기..

좋은 수필 202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