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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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기다리며 / 황상순​

에세이향기 2024. 3. 26. 14:40

옥수수를 기다리며 / 황상순

옥수수를 딸 때면 미안하다

잘 업어 기른 아이

포대기에서 훔쳐 빼내 오듯

조심스레 살며시 당겨도

삐이걱 대문 여는 소리가 난다

옷을 벗길 때면 죄스럽다

겹겹이 싸맨 저고리 열듯

얼얼 낯이 뜨거워진다

눈을 찌르는 하이얀 젖가슴에

콱, 막혀오는 숨

머릿속이 눈발 어지러운 벌판이 된다

나이 자신 옥수수

수염을 뜯을 때면 송구스럽다

곱게 기르고 잘 빗질한 수염

이 노옴! 어디다 손을

손길이 멈칫해진다

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솥에 든 옥수수를 기다리는 저녁

한참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잠이 쏟아진다

노오랗게 잘 익은 옥수수

꿈 속에서도 배가 따뜻하여,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