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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미역돌 / 박은주

에세이향기 2024. 4. 5. 09:55

미역돌 / 박은주

 

 

 

 

동풍에 훈기가 실려오면 어머니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바닷물을 먹고 자란 돌미역을 거두어들일 때가 된 것이다. 일기예보를 챙겨보고도 미덥지가 않아 마당에 나가 하늘을 보며 바람을 살핀다. 미역을 따는 날은 물론이고 바싹 마를 때까지 며칠간 햇살과 바람이 뽀송뽀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녘에 전화를 주신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날을 잡은 모양이었다. 언니와 나는 차를 타고 친정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먼저 온 오빠와 올케는 벌써 부지런히 손을 보태고 있었다. 방금 따온 미역을 말리고 있는 어머니는 눈도 돌리지 않은 채, 할 일을 일러주었다. 미역을 뒤적일 때마다 미끌미끌한 바다 냄새가 포말처럼 코끝에서 부서졌다.

어머니에게 미역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목숨과도 같은 재산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친척들이 탐을 낸 것이 미역돌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시내 친척 집에서 학교 다니고 있었기에 집안 살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친척들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새색시가 재산 사정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수확 철이 되자 친척들은 해녀를 시켜 미역을 몰래 따갔다. 그것을 본 이웃사람이 어머니에게 전해주었다. 놀란 어머니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한걸음에 바닷가로 달려갔다. 나룻배에는 금방 따온 미역이 언덕처럼 쌓여있었다. 한눈에 봐도 우리 미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배에 뛰어들어 미역 더미를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친척들이 욕을 퍼부으면서 덤벼들자, 겁먹으면 진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더 거칠게 나갔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남자도 감당하지 못할 힘이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재산 내역을 모조리 밝히고는 친척들에게 빌려준 돈까지 내놓으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미역돌을 넘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늙은 시아버지 어린 며느리를 위해 마련해 좋은 것이 미역돌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리를 앉혀놓고 네 것이니 남이 넘보지 않게 잘 지키라는 당부까지 남겼다. 그러기에 지금도 어머니는 육지의 땅보다 물속에 있는 돌에 더 강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바닷가에 산다고 해서 모든 사림이 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논보다 더 비싸게 매매되는 미역돌은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었다.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돌이었다.

땅의 추구가 다 끝나고 파도가 잠잠한 날, 어머니는 아버지를 앞세워 나룻배를타고 미역돌을 매러 바다로 나갔다. 밭의 김매기처럼 돌매기를 해주어야 미역이 잘 자랐다. 돌을 매지 않으면 미역이 물살에 쉽게 떨어져 나가 수확할 것이 없었다. 미역돌은 물에 잠겨있지만 밭처럼 널찍해서 걸어 다니면서 돌을 맬 수가 없었다. 장대 끝에 끌처럼 생긴 쇠붙이를 묶어서 돌에 붙은 해초를 긁어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장대를 든 두 사람의 동상이 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밭농사와는 달리 미역돌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미역이 달리기 전에 돌을 한 번 매주고 다 자라면 따와서 말리면 끝나는 농사였다. 거두어들일 때까지 매일같이 살펴보지 않아도 되는 농사였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철이 되면 집집이 돈이라고는 말라버리고 없었다. 보리도 익지 않아 내다 팔 것도 없을 때 미역이 돈이 되고 쌀이 되었다. 미역돌은 그야말로 효자 중의 효자였다.

다른 돌에 비해 미역도 많이 달렸다. 까맣게 말라가는 미역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도 집 앞 바닷가에 줄을 서서 누웠다. 발에 누워있는 미역은 한두 차례 뒤집어주면서 말려야 했다. 물기가 있을 때는 들면 처지기 때문에 혼자서 뒤집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뒤집을 때마다 나를 찾았다. 미역은 잠을 자는 것처럼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서서 한 올씩 곱게 뒤집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미역은 하연 물보라 같은 분꽃을 치우며 마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미역은 도매상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다 마르기도 전에 상인들이 집에 찾아왔다. 먼 곳에서 온 상인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면서 미역을 달라고 졸랐다. 좋은 미역은 좋은 돌에서 나는 법이다. 우리 미역돌에 서면 파도가 무릎 아래에서 찰랑거렸다. 밭처럼 평평하면서 넓고 옆으로는 계곡처럼 가파르면서 산봉우리 같은 돌들이 무리지어 있어서 미역이 윤기가 나며 부드러웠다. 다 마른 것을 내주면 그 자리에서 돈을 받기 때문에 팔고 나면 목돈을 만질 수가 있었다.

땅보다 더 수확이 좋은 미역돌은 어머니에게 숨겨놓은 돈주머니였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세상인심 야박해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알차고 실한 미역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역을 판 날은 밥상의 반찬이 달랐다. 고기반찬에 쇠고기를 넣어 끓인 미역국이 밥상에 올라왔다.

우리 집 돌미역은 특히 산후미역으로 인가가 좋았다. 산모가 먹을 미역을 달라고 하면 제일 좋은 미역을 먼저 챙겨주고 팔았다. 어머니도 자식을 가질 때마다 좋은 미역만 골라서 따로 챙겨놓았다. 좋은 미역으로 국을 끓여먹어야 몸이 빨리 회복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힘들게 해산을 하고도 어머니는 오히려 미역국을 먹지 못한 적이 있었다. 바로 나를 낳고 나서 미역국은커녕 밥 한술 뜨지 못했다. 아들이 귀한 집에 다섯째 딸로 태어난 나는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죄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딸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는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보라고 재촉했다. 방에 있던 언니는 울면서 같은 대답을 여러 번 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이 부족해서 하나 더 낳았느냐고 큰소리를 내고는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버지가 여러 날 집을 비울 때까지 어머니와 나는 배를 곯았다.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하신 듯 내가 아이로 딸을 낳았을 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말이 미역국은 먹었느냐는 것이었다. 딸인 나를 낳고 죄인취급을 받은 그 날의 허기가 쉽게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너를 낳은 그 해 미역이 참말로 좋았어. 장사꾼이 산후 미역까지 탐을 냈지만 내가 안 팔았지.”

팔순이 넘은 지금도 미역돌은 어머니의 든든한 주머니다. 나이 때문에 힘에 부치는 논밭은 남을 주었지만 돌은 아직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잠깐 일을 도와준 나는 힘들어 몸살이 나는데 어머니는 멀쩡하다. 벌써 돌매는 이야기를 꺼내는 엇을 보니 내년에도 미역을 하실 모양이다. 발 위의 미역을 손질하는 어머니의 몸놀림이 미역돌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바닷바람에 미역이 뽀송뽀송 말라간다. 어머니의 손에서 미역이 먹음직스럽게 말라간다. 햇살 고운 봄바람에 어머니의 지난 기억도 미역오리처럼 따사롭게 말라간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 소리가 하얗게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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