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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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횃대보/정재순

에세이향기 2024. 4. 5. 09:43

횃대

 

정재순

 

 

  장롱 깊숙이 화선지에 싸여 있는 천은 횃대보가 분명했다. 열아홉 새색시의 혼수품이었던 한 폭 크기의 횃대보에는 부귀와 장수를 기원한다는 꽃과 나비가 수 놓여 있다. 양 끝자락의 ‘복(福)’ 字 는 글자이기 보다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으며 집안에 복이 들어오는 길을 트고 싶었던 엄마의 기도였을 것이다. 당신의 유난했던 손길이 그대로 묻어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창문 가리개로 쓰면 제법 근사할 성 싶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벽에 못을 박아 긴 막대를 걸쳐서 옷을 걸었다. 횃대보는 벽에 걸어둔 옷에 먼지가 앉는 것을 막아 주는 커다란 천으로, 걸어둔 옷이 보이지 않게 미관상 가리개 역할도 했던 보자기 농이었다. 안방 벽장엔 언제나 부모님의 옷이 걸려 있었고, 그 옆 한쪽 면에 길게 놓인 횃대보에는 우리 오남매의 옷들이 들어앉아 수다 꽃을 피웠었다. 카라가 반짝이는 언니오빠들의 교복과 바깥나들이 할 때 입을 동생과 내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벽에 다소곳이 걸린 새하얀 옥양목의 횃대보에는 호랑나비가 멋진 날개무늬를 팔랑거리며 꽃 주위를 맴돌며 날아다녔다. 청실홍실로 살아 움직이는 듯 수(繡)놓인 천에는 모란꽃잎 뒤에 숨어 겨우 꽁무니만 드러낸 노랑나비도 있었다. 다섯 살 계집아이는 횃대보의 빈 공간을 바라보며 늘 꿈을 꾸었다. 팔베개를 하고선 붉은 모란에 혼이 빼앗긴 나비가 되기도 했다. 

 

  횃대보가 걸린 아랫목은 엄마가 불을 지펴 언제나 따끈따끈했었다. 호롱불 아래 윗목에 앉은 엄마가 해어진 양말을 기울 즈음, 우리는 아랫목에서 가마솥에 찐 고구마와 동치미 무를 먹으면서 귀신이야기에 온몸이 달달 소리가 나도록 떨었다. 그럴 때면 보자기 농 안의 옷들도 주인들처럼 서로를 바투 끌어당겼고, 솜이불 밑, 얼기설기 얹힌 다리 사이로 솔가지 군불의 온기가 끝없이 퍼져나갔다. 오늘처럼 겨울바람이 무섭게 울어대면 방바닥이 익는 달큼한 그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다.

 

   횃대보 안은 안식처였다. 동냥을 얻으러 오는 걸인이나 험상궂은 사람이 대문을 들어설 때엔 쪼르르 횃대보 속에 숨었다. 때로는 엄마에게 혼이 나 속이 상할 때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약 구하기가 수월치 않았던 그 때, 큰오빠가 시름시름 앓자 엄마는 한밤중에 낯선 사람을 데려와 치성을 드렸다. 창호지에 난 구멍 사이로 숨죽여 지켜본 광경은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느닷없이 부엌칼로 방 문살을 드르륵 긁는 바람에 얼른 횃대보를 들추고선 뛰어들었다. 그 곳에 있으면 엄마의 자궁처럼 포근하여 오소소 소름이 돋았던 마음이 금세 편안해졌다.  

   횃대보는 웃음을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언니 오빠와 숨바꼭질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는 거기로 숨어들었다. 언니 치마로 얼굴을 휘감고선 두 발은 그 아래로 쏙 내밀은 채 몸통만 횃대보 안으로 숨겼다. 술래가 일부러 못 찾는 척을 하면 잔뜩 힘이 들어간 옹그린 발가락과 등짝에는 땀이 삐질거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식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꼬마는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이다. 지명을 넘긴 지금에 딱 고만큼의 영혼이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들, 사는 일이 절벽 끝에 선 것처럼 아득해질 땐 세상사 다 잊고 순진무구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횃대보에는 꿈이 있었다. 심심할 때는 그 안에서 혼자 놀았다. 나란히 걸려 있는 옷들이 마치 우리 형제들처럼 여겨져 온전히 나를 감싸주는 것 같았다. 그 옷들을 손으로 매만지고 냄새도 맡으며 상념에 빠지곤 했다. 옹기종기 걸린 옷들처럼 우리 형제들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같이 있을 줄 알았다. 그 안은 언제나 든든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그런데 횃대보 속에 걸린 옷처럼 끈끈하게 이어졌던 우리 오남매의 두터운 우애는 어디로 달아나버린 걸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여물자 배필을 만나 저마다 터전을 찾아 나섰다. 나름의 제 몫을 하며 발붙이고 사느라 옆을 돌아다볼 겨를도 없다. 그래도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암탉날개깃에 병아리 모이듯 엄마의 횃대보 속으로 쪼르르 몰려들었다. 

   이제는 그런 일은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다. 각자의 삶이 허락하지 않는 탓도 있을 테지만, 우리를 감싸주던 엄마가 먼 길을 떠난 뒤 우리의 횃대보도 사라져버렸다. 요즘은 겨우 부모님 제삿날이나 얼굴을 마주할 뿐, 거의 남남처럼 지낸다. 오남매를 아우르던 엄마의 부재가 불빛을 잃은 밤배들처럼 저마다 떠다니게 하는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전화 한 통으로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느냐 자위하며 서로의 무심함을 두루뭉술하게 넘긴다. 몸만 건강하면 된다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굳이 함께 뭉쳐야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시큰둥하긴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입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안부를 전하지만 텅 빈 가슴에는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방금 목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해우룩한 마음은 피붙이들이 그립다. 

   멀리 있는 형제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에 그늘이 내려앉는다. 오남매는 대구와 서울 경기도 그리고 바다 건너에 흩어져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 내에 오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마주앉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저 형식적인 혈육의 관계만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무관심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창 있는 벽에다 횃대보를 건다. 말갛게 빨아서 뽀송하게 풀을 먹이고 다림질을 한 옛 옥양목을 걸자, 추억이 방안 가득 들어선다. 모란과 나비 아래서 귀신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모르던 지난 세월이 피어오른다. 여기에 오남매들이 모인다면 어찌될까, 비록 그 시절의 귀여운 꼬마는 아니나 횃대보 속에 몸을 숨기려는 어쭙잖은 나를 보고 한바탕 웃음꽃이 터지리라. 배를 잡고 나뒹굴다가 젖어드는 눈가와 뭉클해진 마음 따라 어느새 우리들의 옛정은 촉촉해지리라. 어리는 조명등 불빛에 모란이 더욱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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