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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그린 지도/강수니

에세이향기 2024. 4. 15. 14:28

길이 그린 지도/강수니

 

내 발등엔 지도가 있다

걷기에만 바빠 못 보던 길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툭툭 불거져

발 거죽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다

굽은 길도 펴가며 걸어 왔었는데

구비를 돌 때 마다 부풀며 휘어져있다

위기 때마다 불끈, 힘주어 일어섰던 불거진 마디들

저 아래 퍼런 시집살이 정맥이 희미하게 지나가고

자지러지는 아기 업고 숨 멎을 듯 뛰던 길

남편 상여 뒤로 발 굴리며 따라가던 깜깜한 길들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세월의 발목을 잡고 여기까지 그려진 지도는

세상의 지우개로는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다

그러나 길은 이어지는 것, 걸으면 또 길이 된다

여기가 종점, 발등 위는 다시 찾아 오르는 길

그래 가자! 이렇듯 걸어 왔는데 어딘들 못 가리!

다시 심장으로 되오르는

회전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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