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소금/이건청

에세이향기 2024. 4. 3. 15:12


소금



 이건청


 
폭양 아래서 마르고 말라, 딱딱한 소금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쓰고 짠 것이 되어 마대 자루에 담기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한 손 고등어 뱃속에 염장질려 저물녘 노을 비낀 산굽이를 따라가고 싶던 때도 있었다. 형형한 두 개 눈동자로 남아 상한 날들 위에 뿌려지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딱딱한 결정을 버리고 싶다. 해안가 함초 숲을 지나, 유인도 무인도를 모두 버리고, 수평선이 되어 걸리고 싶다. 이 마대 자루를 버리고, 다시 물이 되어 출렁이고 싶다.


    
                                             ― 이건청, 「소금」전문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이 그린 지도/강수니  (0) 2024.04.15
내등의 짐/정호승  (1) 2024.04.03
빈 자리가 가렵다/이재무  (0) 2024.04.03
장독대가 있던 집/권대웅  (0) 2024.03.31
그리움의 총량/허향숙  (1)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