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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보리 바람 / 김희숙

에세이향기 2024. 4. 17. 10:54

보리 바람 / 김희숙

 

지내들녘이 들썩이는구려. 축제를 연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소. 가만 보니 여인들이 며칠 전부터 분주히 오갑디다. 노란머리 콩나물은 길쭉한 몸통을 탱탱하게 삶고 갈색 금고사리는 들기름 듬뿍 부어 버무렸소. 채 썬 당근은 윤기 나는 주황빛 살려 볶아내더니 푸른 봄빛 머금은 취나물과 시금치를 무쳐 보리밥 위로 줄 세웁디다. 계란 지단까지 얹으니 고명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는구려. 비빔 솥이 꽃수를 놓은 듯 참으로 곱소. 어른 열댓 명이 둘러서야 비벼질 양이니 오신 분들은 넉넉히 드시오.

오월의 보리논이오. 초록 옷을 벗는 중이라 때깔이 썩 산뜻하진 않소. 까끄라기 수염은 더욱 뻣뻣해져 어린 아이 살갗이라도 스칠까 염려되오. 그래도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구려. 고흐의 밀밭 그림처럼 멋진 배경이 되어주고 싶으나 마디마디에 바람이 들어앉아 미세한 스침에도 흔들린다오. 명지바람만 불어도 휘청대고 냇바람에는 모로 눕게 되지. 누군가 보릿대를 꺾어 불거든 귀 기울여보시오. 속살대는 소리는 언 땅을 녹이던 무용담이고 소곤대는 몸짓은 보리순 뜯으러 왔던 아낙들이 놓고 간 풍문을 날려 보내는 거라오. 피-닐리리 가락이 힘차거든 논바닥 채울 물살이 밀려오는 신호이니 고랑 사이를 누비던 발길을 돌리는 것이 좋겠소.

축제를 열어준다니 반갑기는 하나 도통 속을 모르겠소. 어떤 이는 어렵게 살던 날에 보리밥을 물리게 먹었다며 쳐다보지 않거나 미끈거리는 보리알갱이가 입안에서 돌아다녀 씹을 수 없다고 그릇을 밀치요. 쌀밥에 겨우 보리 몇 톨 섞어 건강식이라며 생색을 냅디다. 오죽하면 예전엔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까지 했겠소. 나도 엄연한 곡물인데 그때는 자존심이 바닥으로 무너집디다. 또 삶을 되새기는 글들에선 나로 인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슬프고 아릿한 추억이 대부분인 듯하오. 보리문둥이로 부르거나 보릿대춤을 춘다느니 보리바둑을 둔다며 웃음거리로 만들 때마다 억울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가 없소. 가난의 상징이라느니 일등 곡식이 아니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뱉을 땐 허망하기까지 합디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겨울 땅조차 놀리지 않았던 것도 내가 기후 조건을 따지지 않고 자라는 습성을 지녔기에 가능했을 것이오. 물속에 발끝 담구고 뙤약볕 아래에서 키를 키우는 까탈스런 벼농사만 지었더라면 살림살이는 훨씬 더 팍팍하지 않았을까 싶소.

궁상맞은 역할만 맡았다고 생각하면 오해요. 폼 나는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비중 큰 배역도 주어지더이다. 냉장고가 없던 한여름,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서 까슬한 껍질을 벗지 않은 채로 뜨끈해질 때까지 덖어졌소. 덩달아 바싹 마른 작두콩도 들려 나와 한통속으로 볶였다오. 삶이란 쉬운 길보다 어렵고 힘든 과정에서 얻는 것이 많다기에 살이 타들어가는 열기를 견뎠소. 겨우내 꾸덕하게 말린 부세조기를 장독 안에 켜켜이 누이고 후끈거리는 몸으로 빈틈없이 덮었다오. 구수한 향을 풍기는 작두콩과 부숭부숭한 모싯잎까지 합세하여 귀한 조기를 감쌌지요. 꼿꼿하게 꼬장대던 생선이 처음엔 서먹해하더니 따라붙은 보리 향을 받아들여 대하는 몸짓이 부드러워지더이다. 감히 벌레나 습기가 달려들지 않도록 정성껏 품어주었소. 덕분에 습한 무더위에도 굴비맛은 변함이 없었고 고소함까지 더해져 세인들의 평판이 높았다오. 그 맛에 반한 사람들이 굴비 앞에 내 이름을 나란히 끼워주지 않았겠소. 지난 이야기지만 가문의 영광입디다. 이제는 사시사철 냉동실에서 지내는 굴비인데도 한결같이 보리굴비로 불러주어 고마울 따름이오.

나름의 쓸모가 있던 때에는 나를 갖다 주고 바꿔오는 물건도 있었다오. 보리타작이 끝날 무렵은 과수원의 복숭아가 붉은 기를 늘려가고 참외알이 굵어지는 시기요. 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장마철이면 어머니들은 가마니에서 나를 서너 됫박 퍼내 광주리에 이고 과수원으로 향했다오. 벌레 먹은 복숭아며 흠집 있는 참외지만 발걸음도 당당하게 가져왔소. 새콤달콤하면서 설컹거리는 부위는 자식들 입에 물려주고 달달하고 물렁한 조각은 이 없는 어른들에게 밀어주고는 자신들은 설익은 부분이나 딱딱한 씨방 근처를 훑어 먹습디다. 드러나진 않으나 어미라는 존재들은 거룩한 심성을 지닌 듯하오.

오곡 중에 으뜸이라며 추켜세우던 시절도 있었소. 가을 곡식이 떨어질 즈음, 풋바심으로 허기를 면하고 보리개떡으로 끼니를 건너다가 알곡이 익어가면 한시름 놓았다며 반기더이다. 그러나 세상 입맛은 영원하지 않소. 먹거리가 흔해지면서 찾는 층이 급격히 줄어들었소. 나라 곳간마다 가마니가 쌓여갔고 설상가상으로 타국에서 값싼 보리까지 들어와 활개를 치더니 급기야 정부에서 보리 수매를 폐지하는 지경에 이르렀지 뭐요. 인간들 변심 때문에 사라져간 것들이 어디 한둘인가 싶어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매출 끊긴 농부의 한숨에 된서리 맞은 듯 고개가 꺾이었소. 차가운 땅 속에선 봄이라는 희망이 있습디다. 흙 밖은 매서운 바람이 등을 밀고 무거운 얼음덩이가 짓누르는 곳이오. 곡식으로 거둬들이지 않는 나를 알맹이가 영글기 전에 소여물로라도 보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어찌 변한 인심만 탓하리까. 나에게서 부족한 부분을 곱씹어봤소. 나를 쌀밥에 올리려면 퍼지는 속도가 늦어 미리 한번 삶은 후 밥을 지어야 했다오. 빠르고 간편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조리법까지 번거로우니 자연히 멀어졌겠지요. 그동안 배고프거나 아픈 사람들 곁을 지켜왔소. 아직까진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손길이 있으리라 믿으오. 떠밀려 사라지지 않으려면 변하는 것이 최선이라오. 하여, 영광 고을에서는 물을 빨리 받아들여 쌀처럼 잘 불어나는 보리로 변신시켰소. 불리거나 삶지 않고 물만 조금 더 부어주면 된다오. 밥맛이 부드럽고 찰지다며 ‘찰보리’라는 애칭까지 붙여줍디다.

처음으로 찰보리를 심어 널리 알렸다며 영광을 찰보리시배지로 부르오. 최초라는 성공은 쉽게 오지 않았소. 밤잠을 설치며 논가를 맴도는 시간도 보냈고 낟알이 썩거나 이삭이 패지 않는 실패를 밥 먹듯이 겪었소. 포기하고픈 고비도 여러 번 넘겼소. 노력한다고 바라는 것이 이뤄지겠는가마는 살아남으려는 간절함이 ‘첫’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오.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이 같이하기에 여전히 들판에서 바람 따라 일렁이며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소. 그 처음을 기념하려고 보리이삭이 익어가는 계절에 군남면 지내들에서 잔치를 벌인다오. 남도를 여행하던 옛 선인도 ‘보리 물결은 바람 앞에 부드럽고’라며 영광 보리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었다지요. 보리 바람이 소식을 전하거든 떠나오시오. 보리의 고장에서 그대를 기다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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