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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코다리 1 2 / 이 혜 경

에세이향기 2024. 4. 15. 13:36

코다리· 1 / 이 혜 경

 

단단히 코가 꿰였다. 지느러미를 바짝 붙인 코다리가 차렷 자세로 줄지어 매달렸다. 줄줄이 엮여 꾸덕꾸덕 말라가는 코다리들은 애초에 같은 운명으로 태어난 것일까? 지금은 저렇게 굳어버리고 묶인 몰골이지만 한 때는 바다향을 머금고 탱탱한 자태를 뽐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얼음장 같은 바다를 마구 휘젓고 다니던 어린 노가리 시절에는 두려움을 몰랐을 터이다. 언제 그물에 걸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운명임을 알지 못했기에 거침없는 몸짓으로 더 낯선 곳, 더 깊은 곳을 찾아다니며 온몸으로 물살을 밀어냈을 것이다. 부쩍 덩치가 커지고 흑갈색 등에 번지르르한 기름이 돌 때는 스스로 바다의 중심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으리라. 어느 날 어부의 그물에 걸려 처음으로 바다를 벗어난 순간, 금빛 햇살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인 줄도 모른 채 눈부신 햇살을 휘감으며 온몸을 퍼덕이다 촘촘한 그물에 갇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처지가 된 것이리라.

 

어렸을 때, 나를 둘러싼 세상이 좁게만 느껴져 더 큰 바다를 마음에 품었다. 보호구역을 벗어나는 일인 줄도 모르고 졸업식장에서 꽃다발을 안고 그저 설레기만 했다. 넓은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만 보며 지느러미를 움직였다.

 

전력으로 헤엄쳐 도달한 낯선 바다에서 운명의 짝을 만났고, 마침내 결혼이라는 배에 올랐다. 햇살 품은 비늘처럼 여러 겹으로 반짝이는 예식장 샹들리에 아래에서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었다. 코가 꿰이는 줄도 모르고,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 보석 왕관을 쓴 그 순간에 자신만만했다. 새로운 배를 타면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거라고, 둘이 함께라면 파도쯤은 거뜬하게 넘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예상과 달리 결혼이라는 배는 끝과 시작이 복잡하게 얽힌 그물이었다. 차고 넘치던 자유시간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단순히 한 남자에게 코가 꿰이는 차원을 넘어서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로 지내면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가족을 챙기는 일이 우선이었다. 가정이라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춰야 잡음이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배가 움직이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는 편이 최선이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며 나의 겉모습도 물기를 잃어갔다. 대충 로션만 발라도 윤이 나던 피부는 푸석한 각질에 덮여 비늘 벗겨진 생선마냥 울퉁불퉁해졌다. 한 번만 매듭을 지어도 단단하게 묶이던 풍성한 머리숱은 간 데 없고 머리끈을 여러 번 감아 묶어도 금세 느슨해졌다. 깊어지는 주름을 감추려고 화장으로 덧칠해 보아도 구겼다 편 종이처럼 접힌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조금씩 시들어가는구나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남은 바다 냄새마저 비린내로 바뀌고 보드랍던 살결이 딱딱하게 변한 코다리를 들고 무슨 요리를 만들까 생각에 잠긴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생태는 무 몇 조각 썰어 넣고 시원한 탕을 끓이기에 좋고, 깔끔하게 건조시킨 포는 결대로 찢어 무침을 만들면 맛이 일품이다. 생태의 싱싱함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마른 포가 지닌 담백함도 없는 반 건조 코다리는 근사한 요리를 만들기에는 어중간한 재료다.

 

고심 끝에 조림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양념이 고루 배려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손질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선 코에서 입으로 이어진 끈을 풀어 한 줄에 엮인 코다리를 한 마리씩 떼어 낸다. 어깨를 겹치고 붙어있던 코다리들이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 손질을 위해 잠시 떨어트려 놓긴 했지만 곧 한 냄비 속에서 지지고 볶게 될 터이니 꽤 질긴 인연이다. 아마 같은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동시에 그물에 걸린 부부가 아닐까 싶다.

 

비릿한 냄새를 잡을 요량으로 향이 강한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볼품없는 껍질과 속살에 보정효과를 주려고 간장과 물엿으로 색깔 옷도 만들어 입힌다. 요리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이려면 불 조절에도 신경 써야 한다. 처음엔 센 불에 올려 살이 풀리지 않도록 하고 한소끔 끓은 후에는 불을 줄여 양념이 졸아들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타이밍을 잘 맞추어 온도를 조절해야 음식의 때깔이 달라진다.

 

살다보면 단점이라 여겼던 부분이 뜻하지 않게 장점으로 바뀌는 수도 있다. 바람과 햇볕을 번갈아 견디며 굳은살이 생긴 코다리는 뜨거운 불에서도 모양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물기를 잃고 얇게 쭈그러든 껍질은 보기엔 딱딱해도 속속들이 양념이 스며들어 풍미를 더한다. 싱싱한 생태로 조림을 하면 미끈거리는 껍질 때문에 오히려 양념이 겉돌기 십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시간의 중력 앞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에 문득문득 서글퍼지곤 했다. 수분크림을 발라 윤기를 내고 색조화장품을 덧칠해 푸석한 얼굴을 감추려고 발버둥쳤지만 물기 잃은 피부는 따로 놀았다.

 

하지만 탱탱한 피부를 거두어간 야속한 세월로 인해 얻은 것도 있다. 겉은 예전보다 초라해졌을지 몰라도 알맹이는 오히려 단단해졌다. 햇살이 비칠 때면 몸을 느슨하게 풀어 따뜻함을 만끽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힘을 주며 버티는 동안 몸도 마음도 야물어졌다. 인생길에서 만난 크고 작은 파도는 맞서 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흔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비록 몸 안의 기름기는 빠져나갔지만 오히려 그 틈 사이로 다양한 양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게 되었다. 젊음이라는 무기는 잃었지만 융통성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뜨거운 김을 쐬며 마지막 숨고르기에 들어간 코다리를 꺼낸다. 접시에 옮겨 담자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뜨거운 냄비 안에서 용케 버틴 덕에 근사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수시로 온도가 달라지는 결혼 생활에서 중심을 잘 잡으면 나 역시 좀 더 맛깔나는 아내가 될 수 있으려나. 달콤 짭조름한 코다리살이 유난히 혀끝에 감기어 붙는다.

 

코다리2 / 이혜경

 

한동안 잊고 지냈다. 아니 잊은 척 하려고 했다. 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겠거니 싶어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트에서 그가 보이면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고 등을 돌리곤 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그가 나타났다. 대게를 찾아 떠난 강구 바닷가 어시장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간판마다, 수족관마다 크고 작은 대게가 요란한 군무를 선보이는 그곳에서 코다리와 조우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전, 글 쓰는 일에 막 재미를 들이던 무렵이었다. 처음 당구를 배우면 눈을 감아도 천장에서 당구대가 눈에 어른거린다더니 내가 그랬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글감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의욕이 샘솟았다. 하루는 부엌에서 저녁 반찬을 만들다가 필을 받아서 ‘코다리’라는 글을 쓰게 되었고 가까이 지내는 문우들에게 먼저 선보였다. 내 딴에는 그동안 써 왔던 형식과 다르게 의미화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 주변의 평가가 궁금했다. 잘 매만지면 특별한 곳에 쓸 수 있겠다는 칭찬을 들고 어깨가 솟아올랐다.

모처럼 어깨에 들어간 뽕이 푹 주저앉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임에서 내 글을 같이 읽었던 선배 작가가 얼마 후에 비슷한 글을 내밀었다. 제목과 소재가 조금 다를 뿐 기본 착상이 거의 흡사했다. 하늘 아래 순수한 창작은 없다고 하지만 단순히 소재가 흡사하다고 보기에는 글을 가지고 온 시기가 가까웠다. 주변에서도 두 글의 내용이 너무 비슷하다며 나를 걱정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선배는 이미 등단한 작가였고 나는 이제 막 입문한 병아리 작가 지망생이었다. 선배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얼마 후에 문예지에 그 글을 발표해 눈도장을 찍었다. 전국으로 뿌려지는 글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등단도 못 한 나는 지면에 발표할 기회조차 없었기에 눈을 뻔히 뜬 채로 나의 코다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연말에는 동인지에까지 발표하는 것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먼저 코다리를 주인공으로 세워 글을 쓴 내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다. 훗날 글을 발표하더라도 독자들은 전후관계를 알지 못하니 내가 그 선배의 글을 흉내 낸 것으로 오해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나의 ‘코다리’는 유행가 가사처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라는 애매한 존재가 되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의욕이 컸던 만큼 실망의 깊이도 컸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당한 기분에다가 글을 쓰는 일 자체에 회의감까지 보태져서 한동안 책을 덮어버렸다. 마음의 고삐를 놓아버린 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글을 놓을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그러면 나만 손해였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글쓰기에 매진했다. 노력 끝에 내가 원했던 문예지에 등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등단작은 ‘코다리’였다. 선배의 글을 모작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등단작은 내가 작가 생활을 하는 이상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기에 꼭 그 작품이어야 했다. 남들이 알아주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내 글이라고 당당하게 알리고 싶었다.

얼마 전에 그 선배의 두 번째 작품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책 속에 소제목 타이틀로 예전의 그 글이 실렸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때린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발을 뻗고 잔다더니 내가 그랬다. 기어의 본인의 글이 맞다고 증명이라도 받고 싶은 그 마음을 읽고 나니 더 이상 열을 낼 필요가 없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니까. 설령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한들 내가 떳떳하면 그만이다.

그동안 애꿎은 누명을 씌워놓고 타박했으니 코다리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할 만도 하다. 한 몸 바쳐 밥상 위에서 전사하고 소재 제공까지 한 일등 공신인데 인사는커녕 눈총만 받았으니 말이다. 속죄라도 하는 마음으로 코다리 여러 꾸러미를 사서 트렁크에 실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장 큰 냄비를 꺼냈다. 물을 한가득 붓고 손질한 코다리를 넣어 양념장을 골고루 끼얹었다. 넉넉한 냄비 안에서 코다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편안하게 몸을 풀어헤친 모습이다. 바닷바람을 견디며 굳어진 살결이 부들부들하게 풀어져 온몸으로 양념 옷을 입었다. 뭉근한 불에 졸여져 가는 코다리찜을 지켜보는 내 눈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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