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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작

노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은/황진숙

에세이향기 2022. 2. 7. 14:41

노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은/황진숙

 

병원 대기실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으려는 방문객에게 문진하기 바쁘다.

“최근 14일 이내 백신 안 맞으셨어요?”

“그러믄유.”

“백신 접종 후 알레르기 반응 나타난 적 있으세요?”

“아이, 그런 거 없어유. 골치 아픈께 물어보지 마유. 여기 노다지 다니는 사람인데유.”

만사가 귀찮다는 듯 창수씨는 쇳소리로 되받아친다.

수액실에서는 간난씨가 소리를 지른다.

“아이고, 사람 죽이네. 큰 바늘로 찌르니까 아프잖어.”

작은 바늘이라고 설명하는 간호사의 말에도 간난씨는 병원이 울리도록 목소리를 높인다.

“워매, 누가 모를 줄 알고. 내가 큰 병원 다녀봐서 다 알어. 어디서 그짓말이여.”

수액이 들어가자 겨우 진정이 된다.

 

 

세월을 먹은 당신은 이방인 차지다. 혈압 당뇨가 불침번을 서고 기억을 훔쳐 가는 치매가 복병처럼 숨어 산다. 기울어가는 육신에 참견할 수 없어 속수무책이다. 이가 빠져 우물거리고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되묻기 일쑤다. 눈이 침침해져 잘 보이지 않는다. 앙상한 다리는 힘이 풀려 휘청거린다. 투덜대는 무릎 탓에 두 발로 걷는 것도 마땅치 않다. 반으로 접힌 육신을 지팡이에, 유모차에 의지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어눌한 걸음마다 터져 나오는 한숨 섞인 ‘아이고’ 소리가 추임새처럼 따라붙는다. 시들어가는 몸과 따르지 못하는 마음의 불협화음이 서늘하다. 부스럭거리며 곁을 내주지 않는 시래기처럼 생기 잃은 당신이 서글프다.

소멸로 가는 기다림이어서일까. 흘러가는 시간이 마뜩잖아 괜스레 성화다. 혈관에서 피를 뽑으면 아까운 피를 왜 이리 많이 뽑냐고 지청구를 쏟아 놓는다. 지난번보다 진료비가 일이 백 원이라도 더 나오면, 주머니에 있는 거 죄다 털어 갈라고 그러냐며 따진다. 아직 순번이 안 됐는데도 바쁘다며 보챈다. 세월의 격랑을 받아낸 메마른 심기가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굴곡지고 파란만장한 삶을 거쳤으니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생을 반추할 줄 알았다. 이만하면 괜찮게 살았노라 자부심을 품고 유유자적할 줄 알았다. 볼 거 안 볼 거 다 봤으니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느린 햇살을 따라 숲을 거닐고 불어오는 바람에 흐트러져도 좋으리.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여유를 만끽하면 좋으련만.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소일거리라 둘러대며 폐지를 주우러 다니고 성치 않은 삭신으로 텃밭에서 나물을 캐서 좌판을 벌인다. 공공근로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기도 한다. 번듯하게 남아있던 한 채의 집은 도회지에 나가 사업을 하는 맏이의 사업자금으로 쓸려나간다. 논 팔고 밭 팔아 자식들 뒤치다꺼리하고 나니 빈손이다. 의지하던 옆지기가 떠난 뒤로 부쩍 외롭다. 먼지 쌓인 빈집을 지키며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다. 골다공증으로 뼈가 부러져 쇠를 덧대 운신마저 어렵게 되자 자식들은 요양병원을 운운한다. 고갱이를 대처로 보낸 후, 밭고랑에 뿌리만 남겨진 몇 장의 배춧잎처럼 내일을 알 수 없어 허허롭다.

생의 끄트머리에 다가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진다. 설렘이 사라지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허망한 생각들에 사로잡혀 맥을 놓는다. 잠이 쉬이 오지 않아 불면의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허나, 그늘진 당신이라고 마냥 체념하고 내려놓으며 받아들이란 법은 없다. 사춘기, 갱년기의 질풍노도가 일흔 아흔에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인생의 한 사이클을 돌았으니 얽매일 것도 속박받을 것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당신 아니던가. 하여 개의치 않고 종주먹을 들이대거나 젊었을 적에 꿈꾸어 온 일을 실행에 옮겨보기도 한다.

가슴에 눌러 담고 산 방랑벽을 들춰 각설이로 살아가는 점례씨. 시골 오일장을 돌며 화려한 발재간과 가위질로 신명 나게 판을 벌이는 그녀를 보고 그 누가 노령이라고 얕잡아 볼 수 있겠는가. 바닥으로 나뒹굴기 전, 떨어지기 직전의 삶을 맘껏 불사르는 단풍처럼 구성지게 뽑아내는 각설이 타령은 보는 사람마저 감흥에 젖게 한다.

목요일만 되면 복지관에 장구를 치러 다니는 복순씨,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머리를 깎아주며 봉사하는 웅주씨, 뒤늦게 국문을 깨치고 읽는 즐거움에 빠져 사는 옥분씨는 활기찬 하루로 늘그막의 가슴을 달군다. 배우고 누리는 일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누구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면 녹이 슬고 뒤처지기 마련이다. 허물어지는 육신을 재건할 수 없지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당신들의 청춘이 생동한다.

주름 많은 몸의 감흥으로, 여전히 꿈꾸는 열정으로 머무르는 당신은 아름답다. 열의를 소진했든 후회로 남았든 할 때까지 해봤든 누구나 황혼에 도달한다. 이루었던 일과 이루지 못해 잊혀야 했던 일들을 겪어 내며 생의 깊이가 더해진다. 싹을 밀어 올리기 위해 바장이는 봄날이 가면 밤새 울어대는 풀벌레 울음소리에 귀 기울일 여름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 별자리가 동쪽에서 빛을 발하면 거둬들여야 할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아차린다. 눈 덮인 겨울 들녘에 서서, 머무르는 지금의 계절이 가야 다음 계절이 오는 진리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터득한다. 흐르는 물처럼 사계절을 따라 뒤척이며 인생을 완성하게 될 당신이기에, 누추하거나 화려하거나 가리지 않고 끌어안는 깊고 먼 눈빛을 지니게 될 당신이기에, 더할 수 없이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도 좋으리. 기어코 올 것이 왔다는 한탄이 아닌, 넉넉한 아량으로 감싸 안으리. 비릿한 풋내기에서 질주하는 청년기를 거쳐 원숙한 장년기를 경유해서 도착할, 노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은.

 

 

어스름이 깔린다. 분주했던 하루가 기우는 저물녘이다. 북적거렸던 병원 대기실도 뜸하다. 펼쳐놓은 업무를 정리하고 갈무리할 시간이다. 당신에게는 고달팠을, 다른 당신에게는 하품 나게 지루했을, 또 다른 당신에게는 보람찼을 하루가 이울어간다. 내일이면 다시 만날 그대들이기에 조금씩 스며드는 당신의 기척에 화답하며 인사를 고한다. 사위어가는 노을이 황홀한 저녁, 모두들 안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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