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치 - 김경윤 -
김경윤(1957~) 전남 해남 출생
오십 고개 앞두고 풍치가 왔다
풍찬노숙의 시절에도 한눈 판 적 없이 불혹을 넘어 왔는데
잇몸에 바람이 들다니!
바람이 들거나 나거나 바람은 뿌리를 흔드는 것
뿌리가 흔들리면서부터 자꾸 생이 불안하다
벌써 어금니 두 개나 무너졌다
태풍에 서까래가 무너진 공가처럼
이빨 빠진 자리가 허허롭다
쇠고기는 고사하고 무말랭이 하나 제대로 깨물 수 없으니
바람 든 이로 또 무엇인들 씹을 수 있겠나
(세상은 얼마나 단단하고 질기던가!)
이제 함부로 입 벌리는 것도 남세스러운 일
그새 잇몸에 바람 든 지도 모르고
염치없이 입술을 나불거리고 다녔다니!
풍치가 오고부터 염치가 생겼다
입안의 말들도 부드러워지고
자꾸 말랑말랑한 것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