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韓紙)
신달자
저 허공의 질감이 어떻더냐
햇살 지나고 박살나는 피투성이 천둥 지나고 할퀴듯 사나운 폭풍 하며
연한 몸빛의 달빛 지나고 연한 쑥물 봄바람 지나고
그 다음에 늘씬하게 두들겨 태어나는 한지
종이의 질긴 정신은 죽음을 넘어왔다
세상이 뱉어내는 것들 다 안아 들인
그래서 낮은 보폭으로
깊은 침묵 안에
얼어붙는 겨울 대지에 쏘옥 고개 드는 싹
소리 없이
도도한 사람의 정신 여기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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