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의 저녁
김경윤
고비의 저녁은 모음의 나라
어스름이 하늘과 지평선의 경계를 허무는 시간이면
적막한 초원은 모음으로 가득하다
양떼도 낙타도 사막을 건너는 바람 소리도
고비에서는 모음으로 운다
아! 와 으! 사이 그 까마득한 광야에서
ㄴ자로 눕거나 ㄷ자로 걷는 짐승들이
말똥 같은 게르에 말똥구리처럼 기어든다
사막을 달리던 바람도 쉼표(?) 같은 게르에서
몸을 눕히는 저녁이면 각진 마음도 어느새
초원의 부추꽃처럼 부드럽게 돗자리를 깐다
우 우 우 쏟아져 내리는 별빛들을
내 고향 말로 쏘내기별이라 불러도 좋겠다
캄캄하고 막막한 고비의 밤
새끼 잃은 말처럼 나는 깨어나
이 붉은 별에 처음 왔던 조상처럼
무릎을 꿇고 어두운 지평선을 바라본다
오! 하늘과 땅 사이
까마득한 우주의 소리가 들린다
태초의 저녁처럼
모음으로 부는 바람 속에서
모래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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