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 김희정
“소나기,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시처럼 말하지 말고 그냥 말해 봐/ 남의 얘기 말고 너를 말해 봐/ 급한 간결체 말고 지루한 만연체로 자세히 말해 봐” -소나기에게-
번개가 기척하며 갈라진 천장이 급한 물줄기를 쏟는다. 프롤로그다. 하늘이 온통 세로 줄무늬다. 소나기다. 비에 긁힌 허공 가득 느낌표다. 비의 언어기호는 말줄임표다. 단락을 끊을 수 없는 연속 문장이다. 간격은 불문율에 부친다. 화면은 세로로 장치된다. 비 오는 풍경을 가로로 자르면 한 폭 그림이 되지 않는다. 비의 간격마다 세로로 잘려야 풍경이 된다. 그래서 다음 장면을 보려면 옆으로 넘기지 않고 위아래로 넘긴다. 비의 온도는 계절마다 달라서 체온으로 느낀다. 비의 정서는 넘치게 미학적이다. 테마는 판타지다. 창이 한 페이지의 빽빽한 텍스트를 채우면 나는 창 안에서 비의 후렴구를 읽는다. 창을 휘몰아치는 비의 몸무게는 날쌘 느낌표를 그으며 미끄러져 와 바닥에 악센트를 찍는다. 비의 본문은 사뭇 시적이다. 갈래는 서사다. 사람과 비는 같은 어조로 온기를 찾아 감성을 건드린다. 빗방울이 창에 미끄럼틀을 타다가 뚜벅뚜벅 걸어와 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비와 나는 상호 텍스트다.
비의 공연을 듣는다. 비의 발소리는 리듬을 타고 거침없이 마음을 빼앗는다. 무리 지은 군대처럼 발맞춰 등장하는 액체들은 대체로 늠름하고 씩씩하다. 빗길은 일방통행이다. 비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택하여 세상의 모든 낮은 데를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 스케일이 크다. 허리를 구부릴 수 없는 직립의 노동을 차용한다. 넘어진 물방울 위로 더 차가운 물방울이 철벅철벅 넘어진다. 파문이다. 각자의 골목 끝에서 정확하게 착지하고 비틀거리지 않는다. 지극히 자의적이다. 저 작은 물방울들은 천성이 투명하고, 꾸미지 않아 알몸이다. 직선으로 땅에 찾아와 몸을 섞느라 구불구불하게 흐르며 자세를 바꾸고 세상을 배운다. 갑자기 해가 나와 존재의 흔적을 지우기도 한다. 버려진 비가 배수구에 걸려 있다.
늦은 퇴근 행렬에 섞여 차 안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올림픽대로의 뻥 뚫린 하늘에 소나기 온다. 비의 세로줄 사이로 빌딩을 채운 불 켜진 창들이 자잘하게 공들여 세공한 보석을 박아 놓은 듯 빛나는 작품이다. 여름 저녁엔 늦게 지는 해와 더위로 뿌연 하늘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인 것이다. 땀을 씻어 낸 고층 빌딩마다 아직 끄지 못한 형광등 불빛이 퇴근을 기다리고 있다. 물 묻은 안개등 누런 황금빛이 가끔 번뜩이는 빨간빛과 초록빛 신호등과 어울려 빛 축제를 보듯 황홀하다. 평소보다 한 시간을 더 도로에서 보내며 그래도 잠시 서늘한 저녁을 즐긴다. 소나기가 하늘하늘한 시폰 재질의 투명한 커튼을 치고 잠시 퇴장한다.
소나기는 충격이다. 대지는 놀란다. 놀란 배경이 뒤로 숨으며 비는 풍경을 앞지른다. 장대비가 금을 그으며 하늘에 굵은 대나무 발 하나를 드리운다. 시원하다. 빈 하늘보다는 배경이 있을 때 비 내리는 모습이 선명하다. 사람의 만남도 다 충격이다. 미안함도 고마움도 쇼크다. 가끔 어떤 만남은 소나기처럼 당돌하고 예측 불허하다. 엄청나게 교양을 덮어쓴 관계는 불편하다. 이기적인 관계엔 목적어만 있다. 배경이 있어서 잘 드러나 보인다. 사람이란 이상하게 작은 미동에도 주파수가 비슷한 높이에 있어서일까 서로 느끼고 알아채기 마련이다. 주어가 빠진 변두리 언어들이 이루는 관계는 집중하고 주제를 찾아봐도 어눌한 의문문이 된다. 텁텁하게 누적된 감정과 의식들이 블록 쌓듯 관계의 탑을 올리다가도 천둥과 번개가 소나기를 불러들여 결국 시점이 소멸된다. 소나기는 논픽션이다. 직설법이다. 소나기의 화법을 배우되 진지하게, 허튼소리 없이, 직진하는 직립의 만남이고 싶다.
막이 내린다. 소나기는 대사 없이 연주곡으로만 연출한 리얼리티다. 공연이 끝나면 청각도 꺼지고 시각의 모니터도 멈춘 촉각의 아이러니만 남는다. 방백도 사라지고 배경도 걷어치운 축축한 현장에는, 웅성이던 말과 발들이 돌아간 환성의 물비린내만 숨 쉰다. 소나기는 일회용 모노드라마로 짧은 공연을 마친다. 아직 극장을 탈출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킨다. 소나기 퍼붓는 소리, 그 웅장한 서사를 떠올린다. 춤추는 비의 발들, 그 열심을 나는 하이라이트라고 부른다. 내게 하이라이트가 있었던가, 막이 닫힌 무대는 늘 그랬듯이 여운으로 들썩인다. 비가 퇴장한 현장에 버리고 간 철벽같은 공허와 숨죽인 전율에 감동의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커튼콜이다.
오늘도 나는 즉흥 무대 위 떨리는 현장에 있다. 내 연극은 진부한 클리셰다. 아무도 없는 빈 공연장에서 대사를 놓치고 자신을 표절한다. 누구도 박수치지 않는다. 내 공연에 커튼콜은 없다. 내게도 누가 커튼콜을 보낸다면, 감격스럽게 뛰어나올 텐데, 다시 한 번 그럴듯하게 멋진 각본을 들고 노련한 배우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생은 리허설도 없고 커튼콜도 없는 엔딩뿐이다.
비긴 어게인! 소나기는 다시 진행 중이다. 열심히 허공에 줄을 친다. 구겨진 것들에 스프레이를 하며 더위를 지운다. 비의 주름과 주름 사이로 후줄근하던 저녁이 전구를 켠다. 노을이 눈부시다. 그렇지, 짧으니까 소나기다. 만연체가 되지 못한 소나기가 여전히 짧고, 굵고, 급하게 시를 베낀다. 한강에 덜 마른 시 한 페이지 띄운다. 에필로그다. 이제 자유로에 거의 다 왔다. 정면에 자잘한 사선들이 정신없이 달려들며 여름을 나부끼고 있다. 참 기가 막히게 멋진 영상이다. 현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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