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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하린

에세이향기 2023. 6. 28. 03:20





트럭

                                                                                          하린

 

 

트럭, 하고 공기를 토하면 거대한 밤이 질주해 온다 살다 보면 폭력적인 기계를 몰고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싶은 밤은, 꼭 온다 너는 비행소년에서 비행청년으로 자라고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엔진으로 장착한다 방향지시등이 고장 난 삶에서 넌 애인에게 예민한 급소를 들킨다 건기 내내 굶주린 사자처럼 넌 너무 오래된 이빨을 숨겼다 천천히 혈관을 따라 불법 제조한 분노가 주입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혁명이 끓어오른다 식상한 표정으로 어머니가 시야를 흐린다 애야, 넌 너무 착하단다 이제 그만 일하러 가야지 어머니가 걸어갈 때마다 등 뒤에선 사리事理가 뚝뚝 떨어진다 B급 기름 같은 아버지와 길들여지지 않는 애인과 마이너스 통장을 보고도 그런 악몽을 견디다니 어머니는 트럭보다 무서운 기계다

아, 씹어 먹고 싶은, 으깨고 싶은 밤은, 꼭 온다 트럭, 하고 입을 벌리면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고 불만을 가득 채운 가스통을 싣고 트럭들이 몰려온다 어제도 그제도 백 년 전에도 너는 방치된 유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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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은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감각적이면서 사색적으로 그린 시인 하린의 「트럭」을 살펴봅니다. 이 시는 사물이미지에 인간의 정서를 덧씌워 복합적인 이미지 병치 구조로 엮어나가고 있습니다.

 

캄캄한 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트럭’, 그것은 ‘비행소년이고 비행청년’입니다. ‘방향지시등이 고장 난 삶’이어서 어디로 질주할지 모르는 사회적 불만 계급들입니다. 그리하여 ‘굶주린 사자처럼’ 무엇인가 물어뜯고 싶은 이빨을 숨긴 한 마리 짐승이기도 합니다. 오직 혁명을 꿈꾸며 ‘불법 제조한 분노의 기름을 넣고’ 고속도로를, 밤을 질주하는 것은 저항의 심리요, 이탈의 심리입니다. ‘B급 기름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 신분은 ‘흙수저’일 것이고, 어머니는 ‘마이너스 통장을 보고도’ 참고 견디는 순종만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천사가 아니라 ‘트럭보다 무서운 기계’라 할 만합니다. 또한 ‘애인에게 예민한 급소를 들켰’으니, 애인은 너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를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너는 ‘씹어 먹고 싶은, 으깨고 싶은 밤’을 토로합니다. ‘불만을 가득 채운 가스통을 싣고’ 달리는 트럭은 언제 터뜨릴지 또는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방치된 유전자’와 같습니다.

 

원시인님,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이러한 부류의 존재는 없을 수 없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쓰레합니다. - 한밤중 트럭 한 대가 달려옵니다.- 이것은 ‘거대한 밤이 질주해 오는’ 것이고, 너무 거대해 바꿀 수 없는 현 자본주의 사회가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아무리 사리(事理)에 밝게 행동해도 한번 가난은 가난으로 대물림되는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너에게는 가난은 악몽으로 존재하는 현실일 뿐입니다. 어디다 들이받든지 아니면 길을 이탈하고 싶은 심정이겠지요.

 

일자리도 없이 무위도식해야 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토사물 같은 이 시를 제단에 받치고 제사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으로 읽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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