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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경전을 읽다/김경윤

에세이향기 2023. 9. 6. 04:19

불의 경전을 읽다

 

김경윤

누가 한사코 이 먼 이국까지 와서

내 슬픔의 창을 두드리는가

나는 단지 별을 찾아왔을 뿐인데

낭만을 선사한다는 몽골의 별빛 때문에

누추한 게르의 밤을 허락했는데

밤이 깊을수록 바람의 신이 데려간

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영하 40도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에서는

바람의 악사들이 켜는 모린호르의 노래

게르의 천창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들

눈물이 되어 불꽃을 적신다

난로의 연통에 불꽃만 날고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불꽃이 날리는 것은 난로에 장작이 없다는 것

게르에서 겨울밤을 보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지

마음에 불꽃이 없으면 언어는 단지 연기 같은 것

따뜻한 불을 지필 장작 같은 말 한마디 그리운 밤

바람의 신을 추종하는 연기가 허공에 새긴 만자卍字들

밤새 마음에 새기며 타닥타닥

장작들이 펼쳐놓은 불의 경전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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