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경전을 읽다
김경윤
누가 한사코 이 먼 이국까지 와서
내 슬픔의 창을 두드리는가
나는 단지 별을 찾아왔을 뿐인데
낭만을 선사한다는 몽골의 별빛 때문에
누추한 게르의 밤을 허락했는데
밤이 깊을수록 바람의 신이 데려간
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영하 40도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에서는
바람의 악사들이 켜는 모린호르의 노래
게르의 천창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들
눈물이 되어 불꽃을 적신다
난로의 연통에 불꽃만 날고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불꽃이 날리는 것은 난로에 장작이 없다는 것
게르에서 겨울밤을 보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지
마음에 불꽃이 없으면 언어는 단지 연기 같은 것
따뜻한 불을 지필 장작 같은 말 한마디 그리운 밤
바람의 신을 추종하는 연기가 허공에 새긴 만자卍字들
밤새 마음에 새기며 타닥타닥
장작들이 펼쳐놓은 불의 경전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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