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황 진 숙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희망에 부풀고 절망에 주저앉으면서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인연의 고리 만들기가 어디 쉽더냐. 뭉치고 치대고 끊어지며 나름의 결을 만들어 가는 것, 하나의 숨구멍으로 호흡하는 살갗을 만들어가는 것. 이해관계를 셈하지 않고 온 가슴으로 서로를 받아들여야 함이다. 풀어질 수 없는 끈끈함과 퍼질 수 없는 찰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일 테다.
온전히 하나 됨만이 농익은 맛을 낼 수 있다. 웃자란 풀이 풋내를 풍기듯 미숙함은 풋맛을 주고 지나침은 신맛을 낸다. 수백 겹의 인내심으로 이루어진 파이의 결들이 내뱉는 향에 환호하고 촉촉한 식빵이 주는 담백함에 젖어 들지니.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겹겹의 밀푀유를 만들듯이 치열하게 치댄 시간만이 우리가 지닌 오묘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덩어리진 모양이 심심하다고 뼈와 근육이 없는 건 아니다. 바삭한 껍질에 부드러운 속살, 부드러운 껍질에 쫄깃한 속살은 시간과 정성으로 엮어 놓은 뼈대와 살의 조화다. 이 험난한 세상, 누군들 각을 세우고 싶지 않으리. 파도의 힘으로 지워진 모서리를 가진 몽돌처럼 손끝의 온기로 어르고 달랜 둥글함이 모난 마음을 잡아준다.
순백의 여정이기에 모든 걸 받아들인다. 짓눌리고 패대기 당해도 과거의 흔적들은 두고 왔으니 담담하다. 하늘로 뻗어나가는 밀에 담긴 초록의 기억은 밀밭에 두고 왔다. 소금에 밴 갯내음은 염전에서 말리고 왔다. 사탕수수밭의 단내어린 설탕의 열기는 모두 지우고 왔다. 깃털 빠지며 날아오르려 했던 알의 전생은 추억일 뿐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희디 흰 순수함으로 칼집의 상처 낸 쓰라림도 네모반듯한 틀에 갇힌 고독함도 생크림의 달달함에도 견뎌낼 지층이 된다.
반죽이 되어봐야 알 일이었다. 과거의 무늬를 지우고 만난 질료들이 엮여 있는 덩어리. 한데 뒤섞인 당황스러움은 잠시잠깐이다. 밀고 당기기의 맹랑함에 첫낯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접고 접히는 층 속에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서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에게 타협하느라 엉겨 붙은 마음들이 두들기는 손놀림에 한숨이 되어 새어나오기도 하지만 감겨오는 매끈함에 이내 한 덩어리가 된다. 어우러지는 시간들 속에 소란스러움은 무화되어 가고 스며든 영혼들이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반죽에 담은 내 마음이 빵의 영혼이 됩니다.’
빵을 사기 위해 들른 어느 빵집의 창가에 붙어 있던 문구다. 글귀는 천천히 씹고 음미할수록 살아나는 풍미가 되어 내내 맴돈다. 마음을 담는다는 거, 영혼이 된다는 거. 가장 단순하면서 소박한 마음이 맛을 만들고 그 기억이 영혼을 적시는 게 아닐는지. 겉이 속이 되고 속이 겉이 되는 반죽처럼 포개지면서 비운 마음들이 영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건 아닌지.
껍질과 속살의 차이는 한 겹, 겉장과 속장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두터운 빵 껍질보다는 부드러운 속이 좋았다. 너덜해지는 겉장보다는 빳빳한 속장이 좋았다. 팍팍한 현실에 내 최선은 겉이 아니라 속이 되는 것이었다. 중심이 되기 위해 번화가로 거처를 옮기고, 친목모임을 위해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출한 것도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온도와 습기에 따라 질척거리거나 마르는 겉이 아닌 촉촉함을 유지하는 속에 길들여지기 위해 구분하고 경계하며 섞여들길 거부했다.
주물러지면서 겉과 속이 바뀌는 반죽, 겉장을 뜯어내면 속장이 겉장이 되고 겉장에 표지를 씌우면 속장이 되는 걸 몰랐던 거다. 물기를 만나 풀어진 입자들이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바람 들 듯 드나들어야 탄력과 유연성을 가진 반죽으로 뭉쳐지게 된다. 말랑함을 가지지 못한 반죽은 발효나 굽기가 모두 매끄럽지 못하게 된다.
사는 일 또한 그러하다. 겉과 속을 터놓고 온 몸으로 받아들여 마음을 내줄 때, 인생의 많은 일은 매듭을 풀고 가치를 더한다. 유약이 발라져 매끄러운 윗면과 바르지 않아 거칠고 투박한 밑면을 가진 도자기 접시가 감성을 더하듯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겉과 속의 조화로운 마음이 살아가는 지혜다.
지난날, 테두리 안에 가두고자 했던 내 삶은 마음이 없는 뭉개진 반죽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소박함에 냉소를 던지는 현실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정서를 느끼며 살아가기엔 일상이 건조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음을 찾기 위해 다시 반죽을 한다. 비 오는 날에는 커피 한 잔과 어울리는 모카빵 반죽을, 눈 오는 날은 떠오르는 추억과 함께 할 크림빵 반죽을, 캔 맥주를 마시고 싶을 만큼 햇볕 쨍쨍한 날에는 바게트 반죽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날에는 달달한 머핀 반죽을, 사는 게 버석거릴 때 반죽과 독대하며 올라오는 감정들을 음미해 봐도 좋지 않겠는가.
반죽을 끝낸 마음이 굽기를 통해 적당한 빛깔과 향기로 익어갈 때 내 일상 또한 여물어 갈 것이다. 나다움을 찾고 마음이 차오르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