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고경숙
집 안에 유일하게 있는 입식의자 두 개도 나왔다
자리 잡고 앉은 일대 조부 무릎에 기대고
뻗정다리로 서 있는 삼대 손자들 몸을 뒤틀고 있다
싫다는 객식구 김 씨와 박 씨까지 불려 나와
어색하게 뒷줄에 자리 잡았다
서 있는 이대 가장에게 초점을 맞추다 멈칫,
양복 윗도리 옆에 부엌에서 일하다 뛰어나온
앞치마 혼자 대열 밖으로 도드라져
사진사는 무안하지 않게
다들 옷매무새 한번씩들 정리해달라고,
모인 사람들 옷마다 단추란 단추는 다 채워지고
포마드로 쓸어올린 머리칼 한 올 허투루 날리지 않는다
앞치마 여자는 젖은 손으로 머리칼만 귀 뒤로 넘긴다
이제 모두 정면을 응시한다
오래된 기와지붕도 그 너머 대밭도 그 위를 지나던 구름도
구석에 받쳐놓은 낡은 자전거도 햇살 실은 바람도
모두 놀란 듯 정면을 응시한다
추석 무렵 어느 날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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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네요. 한쪽에 밀려난 이야기요. 하지만 멀어서 아름답고 우리의 이야기여서 귀하고 애틋하게 다가와요. 북적이는 삼대가 사는 집. 더구나 추석 무렵이었고, 어느 맑은 날이었으니 얼마나 설레고 흥성거렸겠어요. 단란한 가족이 사진기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는 게 눈에 선합니다. 사진 한 장 찍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시절에 객식구까지 불려 나와 사진기 앞에 서 있어요. “오래된 기와지붕도 그 너머 대밭도 그 위를 지나던 구름도 구석에 받쳐놓은 낡은 자전거도 햇살 실은 바람도” 가족이 되어서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고요. 찰칵, 순간이 영원으로 남습니다. 일하다 급히 나온 앞치마 두른 어머니가 무안할까 봐 “다들 옷매무새 한번씩들 정리해달라”는 사진사의 배려 깊은 마음도 사진에 담겼어요. 천연색 시절이 그 찬란한 날들이 언제 꺼내도 좋을 그리움으로 남았어요. 어떤 시간은 지날수록 아름다운 것이 있어요. 가족과 함께한 공간이 그러하고요. 가족 같은 이웃이 있는 곳이 그러해요. 색이 바래지 않을 사랑이 있는 거죠.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가족의 직업이 각기 다르고 사회적 이동이 빈번해진 산업화를 맞았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가 생겨났죠. 이동이 용이한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쉬운 핵가족이 보편화된 거죠. 지금은 1인 가구가 늘어나고요. 농경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가족 서사를 이제 영영 못 보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언제든 그때를 소환할 힘 있는 시가 있으니까요. 과거를 재현할 가장 가치로운 시가 살아 있으니까요.
기와집 마당에 일가가 서 있다
집 안에 유일하게 있는 입식의자 두 개도 나왔다
자리 잡고 앉은 일대 조부 무릎에 기대고
뻗정다리로 서 있는 삼대 손자들 몸을 뒤틀고 있다
싫다는 객식구 김 씨와 박 씨까지 불려 나와
어색하게 뒷줄에 자리 잡았다
서 있는 이대 가장에게 초점을 맞추다 멈칫,
양복 윗도리 옆에 부엌에서 일하다 뛰어나온
앞치마 혼자 대열 밖으로 도드라져
사진사는 무안하지 않게
다들 옷매무새 한번씩들 정리해달라고,
모인 사람들 옷마다 단추란 단추는 다 채워지고
포마드로 쓸어올린 머리칼 한 올 허투루 날리지 않는다
앞치마 여자는 젖은 손으로 머리칼만 귀 뒤로 넘긴다
이제 모두 정면을 응시한다
오래된 기와지붕도 그 너머 대밭도 그 위를 지나던 구름도
구석에 받쳐놓은 낡은 자전거도 햇살 실은 바람도
모두 놀란 듯 정면을 응시한다
추석 무렵 어느 날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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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네요. 한쪽에 밀려난 이야기요. 하지만 멀어서 아름답고 우리의 이야기여서 귀하고 애틋하게 다가와요. 북적이는 삼대가 사는 집. 더구나 추석 무렵이었고, 어느 맑은 날이었으니 얼마나 설레고 흥성거렸겠어요. 단란한 가족이 사진기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는 게 눈에 선합니다. 사진 한 장 찍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시절에 객식구까지 불려 나와 사진기 앞에 서 있어요. “오래된 기와지붕도 그 너머 대밭도 그 위를 지나던 구름도 구석에 받쳐놓은 낡은 자전거도 햇살 실은 바람도” 가족이 되어서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고요. 찰칵, 순간이 영원으로 남습니다. 일하다 급히 나온 앞치마 두른 어머니가 무안할까 봐 “다들 옷매무새 한번씩들 정리해달라”는 사진사의 배려 깊은 마음도 사진에 담겼어요. 천연색 시절이 그 찬란한 날들이 언제 꺼내도 좋을 그리움으로 남았어요. 어떤 시간은 지날수록 아름다운 것이 있어요. 가족과 함께한 공간이 그러하고요. 가족 같은 이웃이 있는 곳이 그러해요. 색이 바래지 않을 사랑이 있는 거죠.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가족의 직업이 각기 다르고 사회적 이동이 빈번해진 산업화를 맞았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가 생겨났죠. 이동이 용이한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쉬운 핵가족이 보편화된 거죠. 지금은 1인 가구가 늘어나고요. 농경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가족 서사를 이제 영영 못 보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언제든 그때를 소환할 힘 있는 시가 있으니까요. 과거를 재현할 가장 가치로운 시가 살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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