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약破約/김용삼
터미널의 아침은 늘 분주하다.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사람들은 막 건져 올린 생선처럼 펄떡대는 싱싱함으로 하루를 연다. 삼투압을 하듯, 나는 그들이 선사하는 활기를 연신 안으로 들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2층의 푸드 코트, 이곳이 나의 일터다.
주방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내 몫을 끝내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다. 쌀을 안치고, 소스를 끓이고, 반찬을 담고, 단손에 여러 일을 해치우려면 눈코 뜰 사이가 없다. 매일 같은 일도 처음처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이 음식장사라, 그때도 여느 때처럼 분주했을 게다.
“식사 되나요?”
화들짝 돌아보니 커다란 캐리어를 잡은 스물 남짓의 청년이었다. 시간이 일러 식사는 곤란하다는 말에 청년의 얼굴엔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시간에는 터미널 어디에도 허기를 달래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동은 가능한데, 해드릴까?”
“네. 그거라도….”
우동 하나가 급하게 청년에게 건네졌다. 그는 게 눈 감추듯 국물까지 깨끗이 비워버렸다. 그제야 한껏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결제용 카드를 내밀었다. 아뿔싸, 계산대의 포스를 통해야 카드 결제가 가능한데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한 참이었다. 지갑 속엔 환전한 달러뿐이라며 청년은 다시 난감해했다. 그런들 어쩔 것인가. 먼 길 떠나는 사람, 마음이나마 편케 해주자 싶었다. 괜찮다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 주어도 된다며 청년을 다독였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꼭 다시 오겠단 약속을 남기고 청년은 돌아섰다. 까짓 우동 한 그릇 값이야 받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나는 왠지 그 약속을 믿고 싶었다.
육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아직 청년은 오지 않았다. 오늘처럼 뜬금없이 그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잊고 지낼 때가 더 많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약속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낮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질타하거나 서운함을 읊어댈 수가 없다. 내게도 궂은 날 신경통 도지듯 불쑥불쑥 가슴을 저리게 하는 약속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은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잘랐다고 하는 전설 속의 매듭이다. ‘대답한 방법을 써야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이라 하던가. 살다보면 사소한 일이 단초가 되어 풀리지 않는 매듭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예외 없이 우리는 종종 그 매듭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결하지 않고서는 단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숙제와도 같은 매듭. 그것을 풀어내는 해법 또한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린 알렉산더 대왕의 묘법’을 택했다.
아내와의 관계는 시작부터 헝클어진 실타래였다. 순간마다 풀려는 노력보다 각자의 이기심만 내세웠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실타래는 꼬여만 갔다. 자식이라는 만병통치의 처방전이 생겨 때로는 화해의 손을 잡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욱하는 마음으로 결별이라는 단어를 올릴 때마다 자식이라는 아픈 이름이 발목을 잡곤 했다. 결국 아내와 나는 피차 알렉산더의 칼이 그 매듭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냉랭한 부모의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면서도 딸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부모라는 배가 난항하는 중에도 용케 중심을 잡아준 아이가 무엇보다 대견스러웠다. 한편으로는 해묵은 매듭을 정리할 수 있겠다는 묘한 홀가분함도 생겼다.
입학을 앞둔 딸아이는 잠시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간 함들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등을 떠밀어서라도 휴식의 시간을 주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떠나기 전 날, 딸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아빠, 한 달만 기다려주실래요? 여행 다녀오면 엄마랑 다시 얘기해요.”
앞뒤를 잘라먹은 그 말이 나를 아리게 긋고 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부모의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우물거리는 내게 재차 못을 박듯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 애써 담담한 척, 나도 새끼손가락을 걸어주었다. ‘꼭’이라는 단서 대신 엄지 도장까지 찍고, 빼곡이 눌러쓴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딸은 비행기에 올랐다.
딸이 떠나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짐을 꾸렸다.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조급증 때문이었다. 어쩌면 딸에게 애비의 등을 보여줄 자신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딸애가 대학생이 되면 매듭을 자르기로 했던 아내와의 약속은 어김없이 지켰지만, 결국 딸에겐 몹쓸 애비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왜 해요?”
여행에서 돌아온 딸은 전화로 무섭게 다그쳤다. 어설픈 변명 따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날선 원망을 쏟아놓았다. 이제 자신에게 아버지는 없다는 선언과 하께 야멸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단호했던 선언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단절의 강으로 흐른 십수 년. 파약破約의 대가를 치르느라 지금까지 그리움의 언덕에서 시시포스의 형벌을 치르고 있다. 결국 그로 인해 부녀지간에 가로놓인 매듭은 내 생에 가장 난감한 매듭이 된 셈이다.
나는 어른이 된 딸을 본 적이 없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딸의 얼굴을 그려보지만 내 기억에 조각된 딸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가시선인장 꽃처럼, 가슴 아린 열아홉에 멈추어 있을 뿐이다. 대학 새내기의 풋풋함도, 금쪽 같은 하루를 쪼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보태야 하는 흙수저의 설움도 살피지 못했다. 대학을 마쳤다고, 아수라 같은 세상에서 애비를 향한 원망의 가시를 털어버릴 여유인들 있었으랴. 든든한 사랑이라도 나타나 애비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으면 싶지만, 그마저 닿지 못할 간절한 바람인 것을 어쩌랴.
결국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는 법인 것을, 무엇이 그리 급해 딸이 그토록 원하던 기회조차 허락하지 못했던지. 부모의 이별이라는 버거운 짐을 지고 세상을 홀로 허덕였을 딸. 할 수만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다시 한번 딸과 손가락을 걸고 싶다.
어느새 개점시간이 가까워져온다. 뻐근한 허리를 펴고 우두둑 관절을 풀어준다. 오늘도 행여나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기다림을 접지 않는 한 약속은 아직 진행형이라며 나는 오늘도 그 청년을 기다린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얼마나 큰 회한의 꼬리표가 되는지를 알기에 그와의 약속은 미완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그날 아침처럼 허기진 배를 움켜쥔 청년이 문득 한 끼 밥을 청해올 것만 같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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