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모과/강현자
창밖에 걸린 봄볕이 주춤주춤 겨울을 밀어낸다. 봄을 찾아 나섰다. 우암산 아래 용화사에 가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겠지. 미륵불 뒤로 능수벚나무가 긴 머리채를 죽죽 늘어뜨렸다. 가지마다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가쁜 숨을 몰아쉰다. 광채가 난다. 달달한 봄볕에 취해 자몽한데 은근한 향이 나를 이끈다. 코를 벌름거리며 향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오케스트라가 처음 시작될 때의 크레센도 연주처럼 희미하던 향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자극적이지 않다. 낯설지도 않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뭘까?
마른 풀더미 위에 모과 서너 개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그런데 붉다. 봄볕을 얹은 색이 더욱 화려하면서 1월의 탄생석 가넷처럼 붉다. 붉은 모과라…. 처음 보는 붉은 모과가 궁금했다. 어떻게 이런 빛깔을 담을 수 있을까. 집으로 가져갈까? 마른 풀더미 사이로 삐죽이 생명을 올리는 새싹처럼 탐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바닥에 닿았던 부분에는 골이 깊게 패고 검은 흉터가 있다. 뒤집어보지 않았다면 고혹적인 붉은빛에 반하여 그의 아픔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상처를 우리는 모르고 지나는 때가 있다. 그의 상처를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다.
모든 고통과 고난을 해탈하고 난 뒤의 빛깔이 이럴까? 연둣빛 모과가 저리 붉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을까. 붉은 빛깔 만큼이나 향기도 짙다. 서러움과 허망함에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붉게 노을 진 것일까. 마지막으로 목을 놓아 우느라 저리도 붉은 것일까. 진한 눈물만큼 향기가 붉다.
저 붉은 모과처럼 모진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난 이 용화사를 찾았다. 거리엔 오가는 사람도 드물고 이따금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쓰레기 나부랭이가 꼭 내 마음 같았다. 11월의 무직한 하늘은 아침부터 눈이라도 쏟아낼 듯 스산했다. 내게 불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법정 다툼에서 이제 나의 기도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는 변호사의 조언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는 무엇이라도 붙잡고 기도를 하라고 권했다. 나무라도 좋고 돌이라도 좋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과 촉으로 보건대 어머니도 누구도 아닌 아내의 기도가 가장 절실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하지만 딱히 신앙이 없는 나로서는 용화사가 그래도 마음 편한 곳이었다. 이 근처에 살던 고3 때 새벽마다 범종 소리가 나를 깨운 기억 때문일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이유 없이 발길이 닿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붙잡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세상의 언저리에서 홀로 서성이는 나를 발견했다.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고 대웅전에 들어설 용기도 없었다. 그곳을 지나 위쪽에 작은 법당이 보였다. 사람들을 피해 숨어들 듯 그곳 문을 열었다.
마침 아무도 없다. 어두침침하고 썰렁한 기운이 온몸을 훅 끼얹는다. 불상 앞에 방석을 가지런히 놓고 치렁치렁한 염주를 들었다.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손발이 묶인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면회 때 듣는 조각난 이야기뿐이었다. 변호사 책상 위에 탑을 쌓듯 변론 자료를 준비하는 데도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이 난관을 이겨내고야 말 것이라 다짐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했으니 내가 어떻게 이겨내는지 지켜보시라 했다. 바닥까지 길게 드리운 염주 알이 하나씩 엄지에 밀려 손바닥을 미끄러져 내린다. 눈을 감은 채 숨은 가슴까지 차오른다. 온몸을 흥건히 적신 땀이 오만하던 마음을 낫낫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위에 계신 분은 나를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절대자가 있다면 그분께서 모두 주재하시리라.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나의 존재는 점점 작아졌다. 머리칼이 얼굴에 엉겨붙는다. 순간 등 뒤로 법당 문살이 환하게 비쳐왔다. 이제 날이 개나 보다.
이미 내 육신은 내 것이 아니었다. 어깨 위에 얹은 맷돌이 빠져나가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여전히 열리지 않은 묵직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졌다.
“〇〇〇 씨 댁이죠? 오전에 갈아입을 옷 가지고 오세요, 오늘 나갑니다.”
우연인지 기도 덕분인지 바로 다음 날 그의 족쇄가 풀렸다. 그 후로도 억울한 누명을 모두 벗는데 5년이란 긴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내게 남은 생채기도 오래도록 아물지 못했다.
가을이 다 가도록 누구의 손에도 선택되지 못한 모과는 허망한 생을 마감하러 가는 중이었을 게다. 배웅하는 이 없는 외로운 길을…. 바닥으로 생명을 떨군 열매의 외로움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추운 겨울 모진 칼바람과 겨울 햇살에 다져진 인고의 결과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는 있다. 속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아파본 그런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아픈 사람을 만나면 요란한 말이 아닌 조용한 눈빛만으로도 위로를 전한다. 고통을 만져본 만큼의 진한 향기가 배었다. 못생겨도 좋을 일이다.
붉은 모과는 이제 점점 무르고 썩어서 다음 생을 기약하리라. 나도 언젠가는 생을 다하는 날이 오겠지. 상처가 발효되어 진한 향기를 품을 수 있다면 내게선 어떤 향기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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