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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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돌꽃/김은주

에세이향기 2024. 7. 29. 03:28

돌꽃

 

 

 

 

                                                                                                                                                                       김은주

 

저녁 찬거리를 구하러 길을 나선다.

 길을 가다 보면 늘 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내 발길이 묶인다. 붉은 신호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내내 내 발치에 와 끄떡이는 그림자 때문이다. 그림자는 움직일 때마다 길어졌다 또 짧아지곤 한다. 지는 해에 그림자는 더 길어지고 내 발등을 덮었다가는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파란 불이 켜졌다. 흑백 건반 같은 횡단보도를 탕탕 튕기며 생기발랄한 미니스커트가 건너온다. 그 팔랑이는 치맛자락을 보면서도 나는 길 건널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내 발등에 내려진 그림자만 보고 섰다.

 끄덕이는 그림자를 따라가 보면 그곳에는 종일 햇볕에 그을린 꽃 한 송이 피어있다. 꽃이라 말하기 민망한 모습이지만 내 눈에는 세상 그 어떤 꽃보다 어여쁘고 충실한 꽃이다. 한데 꽃은 제가 꽃인 줄 모른다. 치열한 삶이 그저 자신의 일상인 듯 무심할 뿐이다.

 횡단보도와 횡단보도 사이 삼각주의 보도블록 위에서 종일 과일 행상을 한 그녀는 해 질 녘이면 밀려오는 피로를 견디지 못한 채 한없이 존다. 그녀의 졸고 있는 그림자는 시장 보러 나선 내 발등 위에 드리워져 흔들리는 것이다.

 코앞에 거대한 백화점이 공룡처럼 엎드려 있고 그곳에는 흰서리가 내린 싱싱한 과일이 철을 잊고 쌓여 있다. 입맛만 다시면 열대 과일까지 구색 갖춰 먹을 수 있다. 그런 길목에서 그녀는 수년째 과일 장사를 한다. 도시 과일이 팔리지 않을 것 같으나 그녀는 그곳에서 아이 둘을 낳아 잘 키우고 있다.

 두 차례 배가 불렀지만 그녀가 그 길목을 지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 아이를 낳았는지 몸조리는 어떻게 했는지 내 기억 속에는 없다. 단 하루도 그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는 생각만 뚜렷할 뿐이다.

 큰아이는 이제 학교에 들어간 모양이다. 어릴 적에는 내내 행상 뒤쪽에 세워진 푸른 트럭을 놀이터 삼아 놀아 쌓더니 이젠 제법 화단 모서리에 공책을 펼쳐 놓고 숙제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녀의 일상이 그 삼각주의 횡단보도 안에서 다 이루어지고 아이들 역시 햇볕 아래 뒹굴며 잘도 자란다. 영 팔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과일도 더러 팔리는지 그녀는 몸이 성치 않는 시동생까지 거두며 그 일을 거뜬히 해낸다.

 나는 백화점에서 시장을 봐 나오다가도 늘 그녀의 고단한 그림자에 발목이 잡혀 종일 아스팔트 지열에 데워진 뜨뜻미지근한 과일을 한 보따리 사게 된다. 가끔은 참외의 속을 파내고 먹어야 할 정도로 익어 있지만 매번 과일을 사게 되는 이유는 수 년 동안 보아 온 그녀의 일상이 내 몸 속에 인이 박여 있기 때문이다.

 가난의 끝에 까치발을 하고 서 있는 그녀를 보는 일이 내 발 길을 그곳으로 향하게 하는지 모른다. 하루 종일 허리가 아프도록 서서 그녀가 파는 과일이 얼마큼인지 나는 모른다. 누런 박스 조각에 어설프게 과일 값을 써 놓았지만 다만 마주 앉아 다시 과일 값을 물어보고 실없이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며 그녀의 강인한 꽃 향기를 맡을 뿐이다.

 예전에 사진을 찍다가 보면 좋은 인물 사진을 얻으려면 우선 찍는사람이 약간 맛이 가야 한다.찍는 사람이 제 속을 헐렁하게 보여 줘야 찍히는 사람이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실없이 웃으며 쭈그리고 앉아 그녀에게 말을 걸면 그녀는 여분의 과일을 깎아 내게 건네며 겹겹이 쌓인 마음의 문을 연다. 할 말 안 할 말 다 쏟아내고는 또 환하게 웃는다. 고통의 중심을 웃음으로 얼버무릴 줄도 아는 그녀다.

 사람 사는 일이 들여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녀는 참 답답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듯하다. 하지만 단 한번도 자신의 삶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는 데 나는 박수를 보낸다. 철심보다 더 강한 그녀를 보면 나는 문득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난 돌 꽃이 생각나다.

 한 치의 틈도 존재하지 않는 시멘트 블록 사이에도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고 씨를 날려 자식도 얻었다. 뜨거운 햇볕도 비바람도 다 넘어섰다. 그렇게 참고 견디다 보니 짠 내 나는 삶에도 이제 막 숨통이 터졌다.

 공공의 장소라 사시사철 햇볕 아래 우산 하나에 의지해 있더니만 얼마 전부터는 횡단보도에 천막 두 개를 쳤다. 제법 큰 그늘이 생겼다. 좀 더 커진 그늘만큼 그녀는 요즘 더 행복해 보인다. 세상이 지워 준 짐을 어디 함부로 내려놓지 않고 혀를 물며 견딘 보람이 있나 보다. 누군가 그 고통을 알아줬던지 그녀에게도 그늘이 생긴 것이다.

 이제 천막 안으로 든 그녀는 아무리 졸아도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없다 보니 내 발길을 잡을 일도 없어졌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그늘 한 점이 그녀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된다. 횡단보도와 횡단보도 사이 삼각주의 보도블록 위에 오늘도 돌 꽃 한 송이, 천막 밖으로 목을 빼고 과일을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