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도’와 ‘또’ 사이/박영란

에세이향기 2024. 7. 29. 02:53

 

‘도’와 ‘또’ 사이/박영란
 
 
  “요즘도 글 쓰세요.”
  “아직도 글 써?”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글 쓰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 곧 그만둘 일처럼 보였을까. 그냥 가볍게 물어오는 그 인사말 속에 들어있던 ‘도’의 어감은 늘 강조사처럼 들렸다. 마치 ‘아직도 그 남자를 만나니?’ 하는 확인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를 아직도 만나고 있는 듯한, 현재진행형인 나의 글쓰기에 대해 다분히 회의적인 시선이 담겨있었는지 모른다. 두 권의 책을 내었을 쯤에야 근황에서 ‘도’ 는 사라졌다.
   요즘은 도의 환생처럼 ‘ㄷ’하나가 더 붙어 ‘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거듭되는 행위를 나타내는 이 부사가, 로또에 당첨되고 또 당첨된 그런 기염처럼 들렸다면 좋았을 텐데. 네 번째가 되는 책 「책이랑 연애하지, 뭐」를 출간한 후,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인사말은 ‘또 책을 내었어요’였다. 덕담 속에 담긴 ‘또’라는 말이, 내게는 다시 의미화되었다. 제대로 된 책을 낸 것일까. 그런 자문이 거듭되면서, 이제는 단순히 글쓰기의 결과물이 책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로소 이 길을 너무 멀리 와 버린 듯한 생각이 들었다.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라는 말을 새겨보면, 그들이 들려준 ‘도’와 ‘또’에는 점진적인 나의 흔적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도와 또 사이는 참 길었다. 20년의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정녕 내 인생에 있어서 글 쓰는 일은 운명이었을까. 감히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의식의 7할은 글이었고 그것으로 긴장했고 즐거웠고 괴로웠다. 글 쓰면 행복하다는 어린 딸의 말에 홀려 여기까지 왔지만, 만약 글이 아니고 다른 것이었다면. 다른 어떤 것을 들먹이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유혹했다면, 난 그것을 하지 않았을까. 백지상태에서 글이 출발했던 것처럼, 그 일이 무엇이든 지금처럼 하고 있을 것이다. 싫증 내지 않고 미련하게 해 왔던 이 수필과의 인연처럼, 다른 삶 역시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상상은 잘 안 되지만 다른 방향의 시계視界로 살았을 나. 도와 또 그사이, 과연 나는 나로 살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은 갑자甲子를 맞이한 년의 탓일까. 아님 출간 후의 후유증일까.
   책을 낸 것은 갑일甲日에 대한 스스로의 선물이었다. 선물은 즐거운 것이었지만, 그 과정과 그 결과에 이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출간은 매번 비슷한 고민과 회의와 집중을 오고 가는 결과물이다. 「책이랑 연애하지, 뭐」는 그동안 신문 연재, 잡지에 발표한 작품들과 미발표한 글들을 모아 ‘book essay’로 묶은 책이다. 40편의 책들을 수필로 쓴 다양한 형식의 독후감은 그동안 수필을 위해 공부했던 애정이 담겨있다. 그 애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았다. 애정이 이기적이었다면, 사람들이 전해준 사랑은 감동이었다. 내가 다른 어떤 길을 갔다면 만날 수 없었던 친구와 선배와 선생님들. 그들이 보여준 큰 품성으로 나는 세상으로부터 힘을 얻고 배우면서 또 자란다.
   혹자는 이제 좀 쉬란다. 다른 혹자는 계속 정진하란다. 하지만 딱히 쉬는 것도 그렇다고 글이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출간을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던 반년의 공백은 은근히 두텁다. 그리고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들- ‘작가’라는 소명의식과 정체성과 맞닥뜨린다. 과연 수필' 다운 수필을 쓰고 있는지, 그리고 ‘작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부끄럽지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왜 이 짓을 하느냐 하는 당위성을 묻는다. 무슨 의식을 치르듯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이 행위는 뭘까.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자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 허기가 지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 진정 내가 가지고 갈 것은 이 책들이지 않을까. 「바람이 데려다주리」, 「랄랄라 수필」, 「요즘은 두문불출」.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자식들은 결코 나와 함께 순장하지 못한다. 나의 육신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함께 했던 시간과 그 기억을 담은 이 책들 말고 무엇이 있을까.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아름다웠노라고 말한 시인처럼, 나 또한 랄랄라 노래하며 저 바람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떠나는 일 또한 괜찮으리라. 아! 이 무슨 청승인가. 그래도 위안이 된다.
   아무튼. 선녀가 나무꾼이 숨겨놓은 선녀 옷을 찾았지만, 만약 아이 셋을 낳았다면? 그렇다면 옥황상제가 있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책 네 권의 무게는 날 그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더는 다른 길이 없는 살아볼 수밖에.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을 읽다 / 박종희  (0) 2024.07.30
돌꽃/김은주  (0) 2024.07.29
열무가 있는 여름 / 배혜숙  (0) 2024.07.28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 국명자  (0) 2024.07.28
곰배 / 정서윤  (0) 202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