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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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선/강돈묵

에세이향기 2021. 9. 15. 19:31

 
 
 
 
 
강 돈 묵
점들이 모여서 손을 잡으면 선이 된다. 그 점들이 하나의 통제 속에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모이면 직선이 되고, 자유분방하게 어깨동무하면 곡선이 된다. 그래서 직선은 경직되어있고, 곡선은 자유와 부드러움을 표방한다.
 
직선은 언제나 최대치를 요구한다. 직선은 일정한 수의 점들이 모여서 가장 길게 늘어설 수 있는 것을 바라고, 그 대열에서 이탈하면 질서에는 엄청난 파괴를 초래한다. 직선에 가담된 점들은 이토록 긴장된 안주를 위하여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아니 된다.
 
곡선은 직선과는 전혀 다르다. 언제나 느긋한 마음이어서 경직이란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최소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개성을 발휘한다. 언뜻 보기에는 질서라고는 없는 듯하면서도 선의 끝남이 없이 이어진다. 곡선이 자유와 부드러움을 표방하는 것도 이와 같은 자율적인 결속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직선은 언제나 최대 거리의 효과를 추구하지만, 도중에 장애가 나타나면 제 기능을 상실하고 와르르 무너진다. 그에 반하여 곡선은 어떠한 장애가 돌출하더라도 화냄이 없이 웃으면서 돌아간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직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느긋하게 미소 짓는 곡선인 것이다.
 
선은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뚝 떨어진 두 세계를 이어주는 선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전혀 관계가 없는 세계라 할지라도 선이 끼어들면 서로 친근해진다. 제 아무리 지위가 높고 낮음이 있어도 이 선이 이어주면 함께 어우러진다. 강물이 갈라놓은 두 지역이라 해도 다리의 선으로 연결되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다. 높은 지붕과 절벽 아래의 구렁텅이라도 사닥다리의 선으로 걸쳐 놓으면 그들은 쉽게 관계하고 동질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제 아무리 흩어져 있는 사물이라도 둥글게 원의 곡선으로 둘러치면 한 덩어리가 되고, 무지개선이 드리우면 하늘과 바다가 함께 논다. 이몽룡과 성춘향을 사랑의 선으로 이어주면 부부가 되고,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주면 부자가 되며, 앞집과 뒷집을 이어주면 이웃이 되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면 인류가 된다.
 
그러나 선은 하나를 둘로 가르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때의 선은 냉정하다 못해 비정하기까지 하다. 칼로 자르듯 가차 없이 두 조각을 내는 직선의 능숙함에는 소름이 끼쳐지지만, 곡선의 능글맞은 분할은 교활하기까지 하다.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능선의 곡선은 하늘과 산을 양분한다. 미움의 분할선이 사랑스런 부부 사이로 끼어들면 남남으로 변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끼어들면 가족애를 파괴한다. 다정한 이웃 사이로 끼어들면 원수로 만들고,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인류사회 속으로 파고들면 전쟁을 일으킨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선들의 굴레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사물과 사물 사이에 드리워진 선들 속에서 허덕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걸쳐진 선들 속에서 고뇌한다. 공간과 공간 사이에 드리워진 분할의 선들에 의해 갈등하고 자위도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놓아주질 않는다. 가족과 가족, 친구와 친구, 스승과 제자, 지연과 학연 등으로 꽁꽁 묶인 선에 매달려 가엾은 마음은 흔들리기도 하고 등을 기대기도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국경선이 있고, 남과 북에는 휴전선이 있다. 그 선을 넘기 위해 우리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지워버리고 싶은 휴전선을 바라보면서 한숨짓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에 가면 인식도 하지 않은 채 국경선을 넘나든다. 또 독일의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어디까지가 학교이고, 어디까지가 시가지인지를 알 수가 없다. 프랑크푸르트시청 건물은 여러 건물들 사이에 끼어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런 모습은, 모든 관공서가 울타리에 싸여 신성시되다시피 하는 현실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독일의 농토는 그야말로 각을 이루는 반듯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그들의 성격대로 독일의 문화는 직선의 문화이구나 하는 단정을 내리도록 할 정도로 반듯하고 정연하다. 이같이 직선을 즐기는 독일인들이지만 학교와 기관들은 시민들 사이에 직선을 준비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집집마다 울타리를 치고 담을 높이 쌓고 비밀을 지탱한다. 시청이든 학교든 어디 하나 울타리가 없는 곳이 없고 튼튼한 철문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달려 있다. 공장도 울타리 속에서 숨쉬고, 공원마저도 울타리 속에서 가난한 사람을 비웃는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사용한 교지(敎旨)를 보면 테두리를 긋는 선이 없다. 글을 배우기 위한 서당(書堂)도 별도로 집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훈장집 사랑채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 이후 시작된 오늘날의 상장(賞狀)은 테두리 선이 있다. 상장만이 아니라 오늘날 쓰이고 있는 모든 양식(樣式)들이 직선의 테두리를 고집한다. 학교에도 울타리를 치고, 관공서에도 울타리를 치고, 상장에도 테두리를 하는 것은 일본문화가 아닐까. 즉, 섬의 문화인 일본 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에게는 어떤 것을 구분 짓고 분할하는 습성이 생겼으며 보편화되지 않았는가 싶다. 일본의 테두리 문화, 분할의 문화가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너무도 많이 산재해 있다.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도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일을 한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형성되는 선은 어떤 선일까? 어떠한 굴레에 묶여 살아야 함은 어찌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항시 화합의 곡선을 갈구하며 살려는 노력은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분할의 직선을 쓸어내기 위해 싸리비를 준비하는 아량도 필요한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의 점. 오늘도 이 점들이 모여서 이룬 선들은 직석일까. 곡선일까. 또 나는 이어줌과 나눔의 곡선 위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오늘 하루 줄타기를 했을까. 많은 관중 앞에서 줄타기를 했을 나의 광대춤은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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