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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이 빠진 자리/강돈묵

에세이향기 2021. 9. 15. 19:29

이 빠진 자리

 

 

 

 

 

 

강 돈 묵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 중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던 일은 역시 ‘이 빼기’일 것이다. 이를 뺀 기억은 커다란 바윗돌에 부딪쳤던 것만큼이나 큰 사건으로 내 기억의 한가운데에 남아 있다.

 

놀기에 바빴던 시절, 느닷없이 나타난 이의 흔들림은 예고 없는 한파처럼 차갑게 찾아왔다. 내가 처음 앞니가 흔들리는 것을 발견하고 걱정이 되어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별스럽지 않게 손으로 점검하고 마셨다. 그 후로 아버지는 물꼬를 보듯 가끔 내 이를 점검하셨는데, 그 모습은 마치 이 해 박는 김씨 아저씨 같았다.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표정 없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러던 하루, 아버지는 봄을 맞아 가래로 봇도랑을 치듯 작업에 착수하셨다. 물론 형과 누나들도 내 주위에 둘러앉아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바라봤다.

 

굵은 실로 흔들리는 앞니를 묶고 입을 벌리라고 강요하셨다. 순간 공포가 밀려왔는데 마치 비탈을 굴러 내리는 바윗돌이 내 몸 위로 덮칠 것 같은 무서움이었다. 아버지의 실 당기기는 바윗돌이 자꾸 굴러와 마침내 뼈마디가 납작하게 으스러지는 아픔 속에서 내가 비명을 질렀을 때 끝이 났다. 공포에 질려 눈물이 한 종지는 고여 있는 내 눈 앞에 아버지는 방금 뺀 이를 디밀으셨다.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지른 후에 바라본 이는 실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거 지붕 위로 던지렴.”

 

울음 반 표정으로 받아들고 나오는데 시원한 바람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내 입에서 빠져나온 이가 신기했다. 조금 전에 느끼던 공포는 온 데 간 데 없고, 해냈다는 희열이 온 몸을 휘감고 돌았다.

 

“까치야, 까치야. 네 이하고 내 이하고 바꾸자 하고 지붕 위로 던져라.”

 

아버지가 시키신 대로 나는 소리를 지르고 난 후 지붕 위로 힘껏 던졌다. 그러자 그 이는 내게서 영원히 멀어져갔다.

 

그 후로 이가 흔들리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앞니에서 시작한 이는 차례로 안쪽의 이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었지만, 더러는 신기하게 쉽게 마무리되는 날도 있었다. 단 한번에 일이 끝날 때에는 입에 들었던 차돌맹이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상큼하고 시원했다.

 

가장 힘들게 뺀 이는 송곳니였다. 송곳니는 아버지의 점검도 오래 지속되었다. 아버지가 송곳니를 빼 주시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른 때와 다르게 실도 많이 준비하셨다. 아버지는 실을 내 이에 묶고 그 끄트머리를 문고리에 매달으셨다. 아버지의 동작을 바라보는 나는 벌써 사색이 되어 있었고, 형과 누나들도 숨을 죽이고 침을 삼켰다.

 

“눈 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내가 궁둥이에 힘을 주고 앉자마자 느닷없이 문이 활짝 열리며 내 입술에 물려 있던 실에 탄력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는 내 입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리는 순간 커다란 바윗돌이 내 가슴으로 떨어지는 공포가 밀려왔다. 문이 여닫기를 하며 바윗돌이 여러 번 내 가슴을 친 다음에야 내 입에 물려 있던 공포가 고무줄처럼 튕겨져 나갔다. 그러면 지켜보고 있던 형제들이 먼저 박수를 보내며 좋아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면 까치가 한 달이 가기 전에 제 이를 내게 넘겨준다는 사실이었다. 휑하니 빠져나간 빈 자리에 까치의 이가 돋아났다. 이 일이 거듭되면서 나는 이를 빼는 공포는 새 이를 갖기 위한 몸부림이고, 반드시 다시 나온다는 신뢰감 속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신뢰하고 찰떡 같이 믿고 있던 사실이 요즈음에 와서 무너지는 아픔을 맛본다.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나질 않는다. 뺀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운 이가 돋아난다고 믿고, 형제들까지 지켜보았던 것인데 이젠 그렇지 않다. 그 신뢰가 무너져서 요즈음은 빼면서 아예 인공으로 끼어 넣는다. 아버지처럼 김씨 아저씨를 찾아가서 싼값에 껴 넣는 것도 아니고, 상당한 금액을 챙겨서 치과에 찾아가야 한다.

 

어찌 되었든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라고 믿었다. 이가 부실하면 빼내버리고 제 이와 전혀 차이가 없는 새 이를 끼어 넣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언제나 이를 다 갖추고 열 형제 짝져서 둘러앉아 계를 하듯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하나도 빠진 곳이 없는 온전한 이를 갖추고, 우리 형제들은 우애를 키우며 살아왔다.

 

그러나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나지도 않고 인위적으로도 끼어 넣을 수도 없어, 그 빈 공간만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에 놓이고 말았다.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신뢰도 무너진 지금, 나는 실로 뽑아내던 날의 공포도 끌어낸다. 형제들이 수월하게 뽑히기를 기원하며 지켜보던 눈빛도 흘리지 않는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걱정해 주던 형제들의 사랑도 잊지 않는다.

 

우리 형제들은 그렇게 둘러앉아 서로를 걱정해주며 아왔다. 모두가 가정을 이루어 화목하게 둘러앉아 있을 때는 마치 질서 정연하게 이가 박힌 잇몸 같이 보기에도 좋았다. 빠진 이는 다시 돋아날 것이고, 영구치가 소실되면 의치로도 때우면서 온전한 잇몸을 간직해 왔다. 그런데 이제 형제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 자리에 휑하니ㅁ 바람이 인다. 전에처럼 모여 앉아도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못 본 척 돌아앉기에도 버겁다. 한 곳도 비어 있지 않고 청결하게 빛나던 잇몸이 군데군데 주저앉아 보기에도 을씨년스럽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빠진 이는 돋아나고 아니 나면 의치로 보충한다 했는데, 형제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어쩔 수가 없다. 저 헐렁한 빈 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두레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열 자식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당신의 모습이 이 저녁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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