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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빈 쌀독/박희선

에세이향기 2021. 10. 5. 12:40

빈 쌀독

 

박희선

 

 

오래된 빈집 마당에 금이 간 쌀독 하나가 하늘을 향하여 울었다

쌀독 안에서는 아직도 식구들의 저녁 먹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렸다

제일 크게 들리는 것은 젖이 모자라 보채던 세 살짜리 막내딸 울음,

찬바람 부는저녁이면 목발 짚은 바람들이 와서 새우잠을 자고 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가난한 굴뚝의 저녁때가 되면 키 작은 안주인은

깊은 쌀독에다 상반신을 묻고 바가지로 바닥을 긁었다

바닥 긁는 소리가 언제나 축축했다

삼십 촉 백열등 아래 저녁 밥상

푸른 아욱죽 위에는 바가지 긁던 소리가 동동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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