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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몽당빗자루/김자희

에세이향기 2021. 10. 5. 12:22

몽당 빗자루

김자희

베란다 그늘진 구석에

눈치만 남은 몽당 빗자루

얼마나 많은 길을

제 살 깎아 끌고 다녔는지

닳고 닳아 엉치 뼈가 보인다

허리 펴고 살아온 날이 있기나 했을까

세월의 깊은 골을 건너 헐거워진 빗자루

매듭 풀린 제 몸에 둘레길 내고

바람 들여앉혔다

 

긴 밤 잔기침에 무거워진 눈꺼풀

그리움 보다 더 단단한 뼈대로

문득 걸어온 길 뒤돌아본다.

그늘 고인 틈과 틈

허리 접어 구석구석 쓸던 빗자루

저녁노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해질녘 숨어드는 바람처럼

아직 떠나지 못한 기억들

세월의 이끼가 너무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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