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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바다달팽이/김수우

에세이향기 2021. 10. 5. 12:10

바닷달팽이


김수우

 

 

 

늙은 달팽이들이 버스에 오른다

매달린 집도 삐딱하니 늙었다

공동어시장 충무동 새벽시장 자갈치시장, 남항(南港)의

비린 터널을 통과하는 30번 버스 안

 

닳은 관절로 끌고 온 검은 봉지들

비릿한 아침을 물컥물컥 쏟아낸다

온몸 발이 되어

엉금엉금 경사진 하늘을 끌고 가는 비린 몸뻬들

 

수직을 잊은 지 오래

하지만 쥐라기의 사랑을 잊지 않았으니

 

비늘로 된 집을 지고 초록 신호등을 매일 기다리면서

시계집 정확당 철물점 대성건재 명성약국 차례로 지나면서

낯익은 지옥도 낯선 천국도 허공처럼 걸어

구부러지고 또 구부러진 몸

 

한 번도 배우지 못한 하늘의 섭리를 국밥처럼 먹는

떠난 자식 잊힌 안부를 슬리퍼처럼 끄는

저 수학적 기울기

비릿한 점액질에 묻어나는 비밀, 투명하다

 

무수한 찰나를 미끄러져

우리 앞에 닿은 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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