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김수우
신성동 산복도로 골목
햇발 번진 담벼락에, 옥상 파란 물통 옆에
빨래들이 정직하게
사람보다 더 곰살맞게 살아갑니다
바지는 사람의 무릎보다 기특하고
셔츠는 그 가슴보다 지극합니다
환상을 지우고 지린 풍경을 덜어내고 한 잎 기적조차 털어내고
제 속살 펼쳐내는 하루
기다릴 줄 알고 흔들릴 줄 아는
빨래의 공식은 뺼셈,
쪽바람에도
빛나는 남루입니다
매일 빨아 입는 슬픔도, 자주 빨아 입지 못하는 절망도
무심하고
절실하고
겸허하여
늙을 대로 늙은 작업복
무명 시편처럼 펄럭입니다
영혼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