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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빨래/김수우

에세이향기 2021. 10. 5. 12:12

빨래


김수우

 

 


신성동 산복도로 골목

햇발 번진 담벼락에, 옥상 파란 물통 옆에

빨래들이 정직하게

사람보다 더 곰살맞게 살아갑니다


바지는 사람의 무릎보다 기특하고

셔츠는 그 가슴보다 지극합니다

환상을 지우고 지린 풍경을 덜어내고 한 잎 기적조차 털어내고

제 속살 펼쳐내는 하루


기다릴 줄 알고 흔들릴 줄 아는

빨래의 공식은 뺼셈,

쪽바람에도

빛나는 남루입니다


매일 빨아 입는 슬픔도, 자주 빨아 입지 못하는 절망도

무심하고

절실하고

겸허하여


늙을 대로 늙은 작업복
무명 시편처럼 펄럭입니다
영혼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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