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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노래/황봉학

에세이향기 2021. 10. 5. 12:20

돌의 노래

 

황봉학

 

무너진 성벽의 돌 하나 주워와

책상에 올려놓고 그의 노래를 듣는다

세상살이 과묵하게 지켜왔던 터라

그의 노래는 저음이며 바리톤이다

눈 딱 감고 듣는 그의 노래는

천 년의 천 년을 두고 발효된 소리

비이다가 안개이다가 천둥이다가 번개이다가 절규가 된다

고대의 고대 때부터 돌로 쌓은 성벽은 무너지곤 했다

허물기 위해 쌓은 것이 아니라 막기 위해 쌓은 것이라

돌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은 구르기 위해 생겨난 것

돌의 자유를 속박하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성벽을 쌓았는가

두텁게 쌓을수록 돌은 심장이 멎고 노래를 멈춘다

그를 자유롭게 풀어준 강물에 물어보라

그가 구르며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책상 위에 놓인 돌에서 나는 환청을 듣는다

지층 깊은 곳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그의 환상곡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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