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문장들
최해돈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떨림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담벼락에 사는 벽돌의 나이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걸어오는 봄의 머리카락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행렬의 속도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적색 신호등이 살아있는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온종일 비행하는 먼지의 행방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쓸쓸히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까만 볼펜 뚜껑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주고받은 언어들의 동그란 모양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굴러가다 멈춘 바퀴들의 그늘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도서관 2층과 3층 사이, 계단의 묵언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방으로 들어오는 빛의 따스함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여백을 채우는 사각 유리창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시집 속에 누운 바탕체 작은 글씨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쉼 없이 부는 바람의 성실함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플라스틱 의자의 간절한 기다림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먼 길을 동행하는 어머니의 거친 손등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서랍 속에서 잠자는 어둠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평행으로 흐르는 시간의 고마움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허공에도 무늬가 있다는 신뢰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종이컵에 떨어지는 탱탱한 물방울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바깥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운동화 끈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신문에 박혀있는 소설가의 흑백사진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푸른 저녁으로 지친 나를 데리고 가는 안경테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말없이 기울어가는 계절의 안타까움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일요일이 일요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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